개를 키우지 마라

2008. 7. 23. 19:59간호윤의 책들/아름다운 우리 고소설(2010년)

 

 

 

 

 

 

 

 

 

 

 

 

 

 

 

 

 

 

 

 

 

 

 

 

 

 

 

 

 

 

개를 키우지 마라
인문 > 한국문학이론 > 한국고전문학론

조선시대 최고의 문호 연암의 소설들을 살펴보는 책.

현실과 타협하기 보다는 풍파에 몸을 맡기고 통렬한 비판과 자기 반성을 통해 현실을 극복한 연암에 대한 글이다. '개를 키우지 마라'는 정을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말라는 소리이다. 이 책은 연암의 다양한 언어들 중에서 '개를 키우지 마라'로 시작하여 그의 소설을 따라가고 있다.

1부에서는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의 <과정록>을 통해 연암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2부와 3부에서는 연암의 초기, 중기, 후기에 지어진 소설 12편을 살펴본다. 4부에서는 연암의 사유의 지향을 따라가며 문학론 겸 소설론을 살펴보았다.

5부에서는 연암의 평생도, 연암관계 인물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고소설 비평 용어들을 다루고 있다.

1부
개를 기르지 마라
나는 껄걸 선생이라오
나는 기억력이 아주 나쁘다
책을 펴놓고 공부할 방이 없었다
첫 벼슬은 건축공사감역이셨다
새벽달은 누이의 눈썹과 같구나
연암이 소설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돌아가는 꼴이 미워 소설 9편을 지으셨다
연암소설은 참여소설이다
고소설과 고소설비평이란 무엇인가

2부
<마장전>
인간들의 아첨하는 태도를 논란하니 마치 참사나이를 보는 것 같다
<예덕선생전>
엄 행수가 똥을 쳐서 밥을 먹으니 그의 발은 더럽다지만 입은 깨끗한 것이다
<민옹전>
종로거리를 메운 것은 모조리 황충蝗蟲이야
<양반전>
명절명절을 닦지 않고 부질없이 가문으로 상품으로 삼아 남에게 팔았으니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리요
<김신선전>
홍기弘基는 대은大隱인지라, 유희 속에 몸을 숨겼다
<광문자전>
얼굴이 추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도 용납될 수 었다
<우상전>
잃어버린 예를 비천한 우상에게 구한다
<역학대도전>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 이야기다
<봉산학자전>
참으로 잘 배웠다

3부
<호질>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姓이 다르다
<허생>
문장이 몹시 비분강개하다
<열녀함양박씨전 병서>
남녀의 정욕은 똑같다
<연암소설 12편 도표>

4부
연암의 문학론과 사유의 지향

5부
연암 박지원의 평생도
연암 관계 인물들
참고문헌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고소설비평 용어들
찾아보기

 

<개를 키우지 마라>. 이 책은 제가 출간한 책 중에 가장 오래, 가장 정성을 들인 책입니다. 아래는 <개를 키우지 마라> 머리말 전문입니다 

며칠째 장맛비가 내린다.

훗훗한 방속, 눅진 책향冊香이 비릿한 비내음과 함께 느긋이 파고든다.

내가 이런 날을 좋아하듯 연암을 좋아하는 것도 순전히 이기利己이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중 한 자리는 연암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내의 전략적인 글쓰기와 재주도 좋지만 한계성을 지닌 유자儒者로서 제 스스로 몸을 낮출 줄 아는 인간이기에 더욱 좋다. 억지 밖에 없는 세상에 칼 같은 비유를 든 뼈진 말도 좋지만 스스로 삶 법을 빠듯하게 꾸리는 정갈한 삶의 긴장이 더 좋다. 연암의 붓끝에 완전한 사람이 없는[燕巖筆下無完人] 직필直筆도 좋지만 남루한 삶까지 원융무애圓融無礙, 원만하여 막힘이 없음하려는 순수성純粹性이 좋고 조국 조선을 사랑한 것이 좋고 그의 삶과 작품이 각 따로가 아니라는 점이 더 좋고 소설을 몸으로 삼아 갈피갈피 낮은 백성들의 삶을 그려낸 것이 더더욱 좋다.

이것이 내가 ‘개를 키우지 마라’라는 문패를 단 이유이다. 문패의 단면에는 역관, 분뇨수거인, 걸인, 몰락 양반 등을 감싸 안은 그의 따뜻한 마음자리와 정의의 실종에 대한 올곧은 외침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개를 키우지 마라’는 ‘정을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오늘날 견들은 가족 구성원에 새로운 정서적인 변화를 주며 반려동물伴侶動物, companion animal이라는 격상된 명칭으로 부르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전語典에 ‘애완견愛玩犬’이라는 명사조차 등재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계층階層이 지배하는 조선,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별스런 개와 주고받은 푼푼한 정을 기문奇聞인 양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 관심의 그물을 묵직하니 잡고 있는 연암의 은유이다.

연암의 글 자체가 문학사요, 사상사가 된 지금, 나는 이것이 그의 삶의 동선動線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억압과 모순의 시대에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하였던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중, 몇이 저 개에게 곁을 주고 정을 주고받았나? 나는 연암이 켜켜이 재어놓은 언어들 중, 저 말로 그의 소설을 따라가는 출발점을 삼으려 한다.

 

‘연암소설燕岩小說 산책散策-고소설비평古小說批評 시론試論’이란, 연암소설을 기웃거리되 내 전공인 고소설비평어를 넣어 말 그대로 ‘시론적試論的’으로 살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소설비평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책의 뒤에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고소설비평 용어들’이란 장을 따로 마련하였다. 자득지학自得之學까지는 모르지만, 결례缺禮가 아니라면 이방의 외피外皮만을 추수追隨하는 의양지학依樣之學은 아니 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또 말결에 듬성듬성 내가 공부하며 느낀 신변잡사身邊雜事를 취언醉言처럼 곁들였음도 밝혀둔다.

연암 당대 조선의 지배이념인 유학儒學, 다시 말하면 성리학性理學은 이미 400여 살이 다 되는 노회한 노인이었다. 연암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유학에 붙은 저승꽃을 하나씩 떼어 냈다. 적당히 비겁하면 살아가는데 문제없는 화주현벌華冑顯閥임에도 정박을 마다하고 풍파에 몸을 맡겼으니 그의 글들은 결코 현학적으로 가볍게 던지는 방담放談도 일락逸樂도 아니다.

연암의 소설은 그렇게 저들의 소란스런 반향反響을 감내하고 쓴 글들이다. 더욱이 연암의 언행言行은 각 노는 적이 없으니 그의 소설에 보이는 이른바 상쾌한 우수憂愁, 시원한 역설逆說, 따뜻한 인간성人間性은 그의 삶이자 조선의 풍광이요, 진단서요, 처방전으로 읽고 싶다.

석사논문을 쓴답시고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찾았을 때였다.

선생님께서는 내 푼수를 푼푼히 여기지 않으시던 터라, “그래 자네 아는 사람이 누군가?”하고 물으셨다. 나는 생각도 없이 냉큼 “연암 박지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유인즉, 고전문학이야 내 성정으로 미루어 일찌감치 전공으로 택한 터였고 연암은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하면서 괜찮은, 조선의 소설가였기 때문이었다.

연암을 처음 만난 것이 그러니까 대학교 3학년의 꼬마둥이 국문학도 시절이었으니, 제대로 글눈조차 뜨지 못한  때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되게 그 이가 좋았던지 졸업논문으로 연암소설에 관한 글을 괴발개발 썼다. 연암이 누군지도 모르는 착시현상에서 졸업을 위한 요식 행위로 두어 권 연암에 관한 논문을 선집한 책을 놓고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딱히 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의 가소로움이 얼마나 크셨는지는 후일 알았다. 혼쭐났다.

각설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그만 연암이라는 중세의 사내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나는 연암을 알려고 코를 들이대고는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의 글을 품 속에 안고는 몇 날 며칠 잠도 청해 보았으나 모두 도로였다. 나는 좀처럼 그의 글 문간조차 들어서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 속의 글들은 저러 이러한 일과 생각들이 모아진 것인데, 꼭 서두에 적바림해두고 싶은 것은 세월에 따라 연암소설이 다르게 보였다는 사실이다.

200여 년 저 너머, 적당한 실어증失語症에 걸린 사람들이 꽤 많던 시대였다. 그 시공간으로 들어가 잔뜩 낀 조선후기의 해무海霧를 헤치며 성성하게 걸어간 연암의 뒤를 발맘발맘 좇아가 보려 하였다.

연암이 마음을 도슬러 잡고 먹을 갈아 묵향墨香 속에 넣어 둔 뜻을 세세히 그려내지 못했기에, 이 작은 책자를 강호에 내놓으며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애초부터 연암소설의 전개도를 다 그리려 작정한 것도 내 안투지배眼透紙背나 감식鑑識의 남다름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연암이라는 사내가 좋아 쓴 글이니, 심안心眼이 비좁아 천한 대로 내 놓고 내 깜냥만큼만 깁고 다듬는다는 약속을 제현께 드린다.

고마움을 표시할 분들이 여간 많지 않기에 일일이 적지 못한다. 찾아뵙고 이 책으로 저간의 문안을 여쭈어 섭섭함을 덜고자 한다. 끝으로 비다듬어 고운 책으로 만들어 준 한정희 사장님과 신학태 실장님, 그리고 경인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특히 백공천창百孔千瘡인 교정지를 웃음으로 대해 준 박선주님께 거듭 고마움을 전하고 위로 드린다.


2005. 8. 휴휴헌休休軒에서.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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