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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괴짜들이 보여주는 조선의 속살>

기사입력 2008-06-12 07:11


푸른역사 '기인기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를 읽는 이유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 속에 은근슬쩍 드러나는 그 시대의 맨 얼굴을 엿보는 재미 때문이다.

10여년간 홀아비로 지내며 산천유람을 하던 단정한 선비 양희수는 함경도 안변지방을 지나다 우연히 농사꾼의 집에 들른다. 혼자 집을 지키던 열세살짜리 어여쁜 낭자가 뜻밖에 정갈한 솜씨로 식사대접을 하자 감탄한 양희수는 청홍 부채 두자루를 주며 "이 쥘부채를 너에게 채단(혼례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주는 청홍비단)으로 주려는데 받겠느냐?"하고 농담을 건넨다.

2년 뒤 소녀의 아비가 양희수를 찾아와 딸이 폐백을 받았으니 정혼한 것과 다름없다고 고집하며 양희수의 소실되기를 자청한다고 말한다.

양희수의 소실로 들어온 안변 낭자는 슬기롭게 집안을 꾸려나갔고 아들 둘을 잇따라 낳으니 이 중 한 명이 조선의 명필이 된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다. 안변 낭자는 양희수가 병으로 죽자 관(棺)앞에서 자결하면서 문중 어른들에게 적서차별을 없애 달라고 간청, 양사언은 문과에 나가 급제했고 세상 사람들은 양사언이 서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태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반(宋盤)은 미남으로 유명했지만 몸가짐을 바로 한 군자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사또로 지내면서 하급 벼슬아치의 딸 매희(梅姬)가 미모가 출중한데다 총명한 것을 보고 시경(詩經)의 한구절인 "유녀회춘 길사유지(有女懷春 吉士誘之ㆍ봄을 품은 여인이 있어, 멋진 사내가 꾀어가네)"를 해석해보라고 은근히 수작을 건다.

그러고는 웃으며 "그러면 너는 봄을 품은 여인이 되고 나는 멋진 사내가 되면 어떠하냐?"고 농을 하고 비단 쥘부채를 주며 "이것으로 신물(信物)을 삼으니, 훗날에 너는 나의 별실이 되거라"하고 말한다.

조선말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살면서 매일신보 기자를 지낸 지식인 송순기(宋淳夔ㆍ1892-1927)가 쓴 '기인기사록(奇人奇事錄)'은 조선시대 별난사람들의 별난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지나치게 터무니없거나 말초적이어서 읽고나면 남는 것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기인기사록의 장점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살다간 선비, 재주가 출중한 서민들, 고운 마음씨로 주변을 울린 사람, 21세기 로맨틱 코미디를 뺨치는 근사한 연애를 이끌어낸 여인 등의 이야기를 구수한 문장으로 엮어낸 솜씨가 일품이다.

기인기사록은 1920년대 송순기가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것을 1921년 상권, 1923년 하권으로 묶어 총 107가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고교 교사를 거쳐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국문학자 간호윤(47)씨가 낸 '기인기사'(푸른역사 펴냄)는 기인기사록 중 24가지 이야기를 번역하고 요즘 사람들이 읽기 쉽게 매만진 책이다.

평안감사로 부임한 남편이 기생과 눈이 맞았다는 것을 알고 달려간 부인이 기생의 실물을 보고 "내가 이번에 와서 단연코 너를 죽이려고 했더니, 이제 너를 보니 실로 명물이라 내 어찌 손을 쓰겠느냐"하며 물러난 이야기, 용꿈을 꾸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리를 듣고 하루 종일 용만 생각하고 용그림만 그리다 결국 용꿈을 꾸고 급제한 선비 이야기 등 잘 알려지지않은 야담들을 실었다.

간호윤 씨는 기인기사록은 1941년 하권만 금서가 됐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왜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김충선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는 의견도 서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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