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에서

2008. 7. 10. 15:13기인기사

간호윤 2008.06.14  (221.154.42.48)
조선시대 당신의 조상님, 혹시 별난 분 없었나요
일제때 매일신보 송순기 기자
조선의 기담 연재 후 책 펴내
최근 발굴된 〈하〉권 일화 묶어
기인기사-송순기 지음/간호윤 풀어 엮음/푸른역사/1만3900원

 
22살의 일본 청년 사야가(沙也可·1571~1642)는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을 따라 조선 출정에 나섰다. 부산에 도착한 그는 3000명의 병사를 데리고 조선에 투항했다. 그는 조총 제조술을 조선에 넘겼고, 임금은 그에게 벼슬과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이후 대구 지역에 정착했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에도 조선을 도운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은 조선으로 봐서는 충성스런 행동이지만, 일본인에게 기행이다. 김충선은 자신의 이 같은 행동은 평소 '조선을 소중화국으로 흠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조선시대 평양사람 황순승은 고집이 매우 셌다. 누구나 그를 '황고집'이라 불렀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이 다리에 오래된 무덤의 횟가루가 사용됐다. 그는 그후 단 한 번도 이 다리를 밟고 건너지 않았다. 무덤 횟가루를 밟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또 하루는 칼을 둔 도둑이 다리 옆에서 황순승을 노렸다. '황고집'이 다리를 이용하지 않자, 당황한 도둑은 "어허, '황고집'이야. 범하지 못할 사람이군"이라며 낙담하며 돌아갔다.



조태억(1675~1728)은 부인이 무서워 바람을 피울 수 없었다. 그는 평양에 갔다가 기생과 눈이 맞는다. 부인은 한달음에 평양으로 달려간다. 조태억은 기생에게 피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기생은 몸을 한껏 치장하고 부인을 마중 나간다. "과연 명물은 명물이로세.


 
사내가 이 같은 명기를 보고 가까이 하지 아니하면 가히 졸장부라 불러도 되겠다. 너를 죽이려 했으나, 명물이라 어찌 손을 쓰겠느냐. 영감에게 돌아가라. 다만 영감이 지나치게 너에게 빠지지 않게 하라"며 호랑이 같았던 그 부인은 물러섰다.


일제 때 매일신보 기자 송순기는 이 같은 기담들을 하나씩 발굴해 신문에 연재했다. 그는 연재 직후 '기인기사록'을 상·하 두 권으로 묶어 출판했다.


 
이 두 권에는 총 107가지 기담이 실렸고, 상권(51가지)은 1921년에, 하권(56가지)은 1923년 간행됐다. 잊혀졌던 이 책 하권이 최근 발굴됐다. '조선의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기인기사는 하권에서 추려낸 24가지 일화만 묶은 책이다. 이를 편집·번역하고 엮은 간호윤(47) 씨는 서문에서 "하권이 이제서야 발굴된 것은 김충선 일화가 조선총독부의 심기를 건드려 금서로 지정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된 일화들 외에도 '기인기사'에는 잠자리 증표를 써달라고 한 새 신부 이야기, 여인을 잘 만나 벼슬을 한 김우항 이야기, 농담을 던져 결혼한 조선시대 사내들 이야기 등 조선시대 기담들이 실려 있다. 과장돼 보이지만 말초적인 이야기만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정옥재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

  입력: 2008.06.13 20:12 / 수정: 2008.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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