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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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3)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③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3)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③ 간호윤 승인 2023.10.16 17:26 수정 2023.10.16 17:34 2023.10.17 15면 댓글 0 SNS 기사보내기 ⑤자유시 참변과 공산당 운운: 우리 독립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인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일어났다. 고려혁명군사의회가 사할린의용대를 친 사건이다.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하였다는 주장은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주장일 뿐이다. 학술적으로 자유시 참변 때 홍범도는 그 곳에 없었고 다음 날 참변 현장에 와 보고 통곡했다는 게 정론이다. 이 참변을 직접 목격한 독립군 김승일의 기록은 이렇다. “낮 12시…한 방의 총소리가 나더니 그에 이어 양측에서 사격이 시작되었습..
2023.10.18 -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2)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②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2)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② ③의병 대장: 1895년(27세)에 시작한 홍범도 장군의 의병 활동은 1908년(40세) 고문당한 아내의 죽음과 첫아들 양순을 전투 속에 잃는 참담함에도 이어진다. 이 해 일본군을 피해 중국 길림성으로 부대원을 이끌고 들어가고 아들 용환은 러시아로 간다. 이후 용환 역시 아버지를 따라 봉오동 전투에도 참여하는 등 의병 활동을 하다 날짜조차 모르는 어느 날 러시아 스파스크 이국땅에 뼈를 묻었다. 홍범도 장군은 중국, 국내,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오가며 의병 활동을 하는 한편, 자금 마련을 위해 노동판 짐꾼(43세), 항구 노동자로 모은 품삯으로 신문잡지를 발행(45세)한다. 계연수(桂延壽, ?~1920)가 ..
2023.09.30 -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1)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①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1)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① 홍여천 만이 오호대장의 한 명 지금까지 홍범도를 알고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재러 작가 김세일(1912~?) 씨. 그가 북한에 들어갔을 때 홍범도가 홍경래(洪景來,1780~1812) 가문이라는 말을 들었단다. 1811년, 조선 왕조의 부정과 폐단에 맞서 대규모 민중 항쟁을 일으킨 홍경래, 남양 홍씨로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에서 태어났으니 일리 있는 전언이다. 그때 백성들이 “철산 치오/가산 치오/정주 치오”하고 부른 노래가 이다. 홍경래가 평안북도라면 홍범도는 평안남도에서 떨쳐 일어났다. 묘한 울림으로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쓴다. 차마 눈뜨고 못 볼 형국이다. 이 정부의 행태를. ..
20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