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나귀가죽을 보고>

2023. 3. 8. 17:38영화를 보고

<발자크의 나귀가죽을 보고>

 휴헌 간호윤  2023. 3. 7. 10:29
 
 

<발자크의 나귀가죽>

 

<발자크의 나귀가죽>은 발자크의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지식이 있는 라파엘. 그는 유명 작가가 되어 삶을 역전시키려 한다. 하지만 출판을 거절당한 그는 꿈[욕망]을 잃고 삶을 등지려 한다. 그때 라파엘 앞에 모든 소원[욕망]을 들어주는 ‘나귀가죽’이 나타난다. 나귀가죽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소원을 들어줄 때마다 목숨이 줄어든다는 무시무시한 조건이다. 

 

라파엘은 두말없이 ‘나귀가죽’을 받고 부와 작가로서 명예, 그리고 원하는 여인까지 얻는다. 약속대로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줄어드는 ‘나귀가죽’만큼 라파엘의 수명도 사라진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그 욕망을 꿈이라 하든 소원이라 물질이라 하든 유의어임에 분명하다. 발자크가 살았던 시기는 욕망이 들끓는 시기였다. 1789년 7월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에 불을 댕겼다. 발자크의 소설에 등장하는 냉혹하고 천박하며 추악한 욕망으로 들끓는 인간들은 바로 이 ‘물질’만을 좇는다. 

 

‘나귀가죽’이 바로 ‘욕망’의 은유이다. 실질적으로 발자크에게도 글로써 부와 작가로서 명예까지 거머쥐려는 욕망이 있었다. 발자크는 자신의 이름을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라 하였다. 드(de)는 경칭에 쓰인다.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가 쓴 『발자크 평전』을 보면 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서른 살쯤의 어느 날 발자크는 세상을 향해서 자신은 오노레 발자크가 아니라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라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귀족 칭호를 사용할 정당한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편지와 책들에다가 ‘드’발자크라고 서명하였다. 심지어 빈으로 가는 여행 마차에 당트레그 집안의 문장(紋章, 집안의 상징 문양)을 달기까지 하였다. 허영심에서 스스로를 귀족으로 만든 이러한 행동 때문에 불친절한 다른 문인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발자크는 귀족이 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발자크의 삶은 귀족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인다. 물질과는 더욱. 발자크는 밥벌이를 위한 잡문을 썼으나 모두 실패한다. 이어 출판업·인쇄업·활자 주조업 등의 사업에 손을 댔으나 역시 실패, 실패, 또 실패다. 1828년에는 6만 프랑 이상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 후 발자크의 생활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부채와 그 부채를 갚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글쓰기였다. 그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셨다. 이 때문인지 발자크는 겨우 51세로 요절하였다. 발자크의 삶이 그렇듯, <발자크의 나귀가죽> 속 라파엘 역시 죽음으로 끝난다.

 

나 역시 고백하건대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난망(難望) 한 욕망(欲望)이기에, 어디 ‘나귀가죽’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린다. 비록 남은 생애를 저당 잡힐지라도. 옳은지 그른지는 오로지 내 몫이다. 내 삶이 애오라지 삶이듯. 

 

혹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나귀가죽’을 찾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