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을 만나다 26] 교과서 속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
박지원 | 간호윤 역 | 새물결플러스 | 352쪽 | 16,000원
소설을 좋아하고 문학 서평을 쓰다 보니, 간혹 “어떤 소설이 좋으냐?” 하며 좋은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의외다’는 반응과 함께, 그보다는 다른 책을 권해달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우리가 <문학> 교과서의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을 읽으려고 하거나 폄하하는 건, <문학> 교과서를 시험용으로 읽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든데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은 유치할 것 같은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학>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은 전문가들이 검증에 검증을 거쳐서 교육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수록한 것입니다. 단순히 시험용이 아닌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이라고 여기며 읽는다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원하는 분들이 읽기에 아주 좋습니다.
이번에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집>입니다.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우리에겐 <호질>, <양반전>, <허생전> 등의 작품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 책은 12편이 실렸습니다.
읽다 보면 그 당시 이렇게 뜨인 시각을 가진 분이 있고, 그것을 소설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놀라게 됩니다. 한자가 있고, 역사 배경도 알아야 이해될 수 있어 어려운 점도 있지만, 글이 주는 깊이감이 있고 옛 우리말이 주는 정감과 정취가 있어 좋습니다. 무엇보다 한 편당 분량이 짧아서 읽기에 아주 수월합니다.
우리가 지나고 나서야 그 시대가 조선의 중기니 후기니 하지만, 당시를 사는 사람은 지금이 이 나라의 중기인지 말기인지 몰랐을 겁니다. 제가 ‘조선 후기’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때를 가르고 시기를 구분하는 건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들이 모아진 분위기’라는 겁니다.
현실에 대해 안주하고, 전과 같은 사고를 가진다면 시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우리가 청소년의 때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는 건, 그때만 되면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모습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중기니 후기니 하는 것도 결국 현실의 불만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아지고 그래서 다른 이름의 나라가 되는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생각의 전환이 시대를 구분 짓습니다.’
저자에 대해 모르고 단지 ‘조선 시대의 글’이라는 정보만 갖고 이 책을 읽는다 해도, ‘상당히 새롭네’, ‘이 시대에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책’이라는 정보까지 들으면 ‘그러면 그렇지’ 할 겁니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신선합니다.
100년도 더 된 책이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지식인들이 꿈꾼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저자 박지원은 답답한 현실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소설을 찾았고, 그는 소설에서 지금의 현실과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을 표현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답답함과 함께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가는 오선지와 악기로 답답함을 풀고, 화가는 미술로 풀고, 배우는 연기로 풀고, 과학자는 발명품으로 풀고, 장사꾼은 장사로 풀고, 정치인은 정치로 풀고, 작가는 글로 풉니다.
옮긴이의 해설은 한자와 옛말이 섞여 어려울 수 있는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표지도 잘 만들었습니다.
▲지은이 연암 박지원. |
하지만 이 책은 분명한 단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옮긴이의 해설이 지나치게 자세하다는 겁니다. 자세해서 나쁠 게 없겠으나, 본문을 가지고 이해될 만 하면 각주를 통해 바로 이 단락의 의미를 바로 알려주고, 앞뒤로 줄거리를 상세하게 요약해주어 읽는 이의 감상을 방해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마치 읽는 이의 생각을 교정해주는 듯하고, 자칫 교과서의 작품을 읽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서 내용에 대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처럼 여기게 합니다. 작품마다 본문 앞에 ‘이해와 감상’, 본문 뒤에 ‘제∼(작품제목) 후’라 하여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두 번씩 설명합니다. 이렇게 동어반복이 되다보니 본문을 통해 느껴지는 감동이 줄어듭니다.
또 옮긴이의 해설이 너무 직접적이고 교시적이라 읽는 이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쓰이는 단어도 일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쓰는 듯하여 부자연스러우면서 거슬리기도 합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처음 읽을 때 각주나 설명을 읽지 않고 바로 본문부터 읽는 겁니다. 물론 본문에 포진된 각주 숫자가 눈에 걸려 각주를 보고 싶은 욕구가 들겠지만, 참아내고 본문을 읽다가 정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읽는다면 이 책의 진가와 함께 나만의 ‘박지원 소설 이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왜 이 책을 기독교 출판사에서 냈을까 하는 점입니다. 내용 어디에서도 성경이나 예수님, 하나님, 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훌륭한 옛 우리 소설입니다.
저도 기독교 출판사에서 소설이 나와 이렇게 감상평을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선 기독교적인 메시지나 기독교와 관련된 어떤 단어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소설은 작가의 생각과 함께 당시의 시대가 반영될 수밖에 없음을 말입니다. 그 형태가 판타지가 되었건, 스릴러가 되었건, 연애나 드라마가 되었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시대가 그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편의 소설은 자체로 훌륭한 역사 기록물입니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소장할 만한 책이고,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었습니다. 옛글의 정취와 조선 후기의 사상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권합니다.
이성구 부장(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