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9. 11:33ㆍ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도봉고 특강을 다녀와서.
“잠깐 5분만 쉬겠습니다. 잘 사람이나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 들어오지 마세요.”
도봉고 특강을 갔다. 2시간 강의다. 16년 만의 고등학교 강의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13년을 보낸 나다. 그래도 마음이 설렌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였다. 도봉산 아랫자락, 교사도 운동장도 아담한 학교였다.
“전 이 도봉고에 와 네 가지를 놀랐습니다. 첫째 금연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놓여 있다는 것, 둘째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 셋째 대학처럼 자신들이 수강신청을 한다는 것, ---”
학생 수 100여 명의 작은 학교지만 학교 교육행정은 다부진 커리큘럼으로 짜여졌다.
강의가 시작되고 5분쯤 지났다. 5/1쯤의 학생들이 졸기 시작하였다. 수업은 첫 5분이 좌우한다. 목소리 톤을 높이고 좌우로 동선을 크게 움직였다.
30분쯤 지났다. 5/3쯤.
그래도 깨어, 비스듬히 앉아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녀석에게 질문을 하였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좋은 대학 진학이요.”
“그래서.”
“좋은 직장 취직이요.”
“그래서.”
“돈 많이 벌어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지요.”
“그래서.”
---------------.
5/4가 졸고 있었다.
두 시간 강의에 이제 겨우 50분이 지났다. 내 목소리는 이미 7옥타브쯤 올라가 있었다.
수업을 멈추었다.
“5분만 쉬겠습니다. 잘 사람이나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세요. 들어오지 마세요.”
한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어이, 쎈데.”
술렁거리다가 남은 학생들은 그래도 5/2쯤. “어이, 쎈데.” 녀석도 남았다. 몇 분의 선생님들께서 황급히 달려오셨다.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냥 두시지요. 이것도 교육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변명치고는 참'
“자 이제, 다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
지금까지 내 말의 핵심은 ‘나’입니다.”
5/2쯤의 녀석들은 진진하게 들어주었다.(물론 조는 녀석도 있었다.) 몇 녀석들은 다가와 악수도 청했다. “어이, 쎈데.” 녀석은 “지금까지 강의 중 최고였어.”라는 명문장(?)도 날렸다. (강의 마지막엔 이 녀석도 졸았다.)
책 두 권을 기념으로 주었다.
돌아오는 길, 웃음이 났다. 선생생활 30년이거늘, '역시 고등학생 녀석들은 만만찮았다.'라는 말로 내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저녁, 운동하는 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 한 후배가 나에게 말했다.
“형은 유머가 없어. 그래가지고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
집으로 가는 길, '도봉고 수업'과 '유머가 없어'라는 말이 자박자박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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