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에 소개된 <당신, 연암>입니다.

2012. 10. 13. 12:15연암 박지원 평전

[신간 돋보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박지원
지인·후손 등 11명의 시선으로 연암의 삶과 사상 입체적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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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연암 /간호윤 지음 /푸른역사 /1만5000원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요,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자로다. 오늘 아침 나는 참 좋은 책을 읽었구나."

조선 정조 때의 권신, 홍국영에 쫓겨 황해도 장단군의 두메산골 연암협에 머무르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어느날 아침 새가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것을 보고 시를 읊듯 말했다. 옆에 있던 연암의 아들 종채가 무슨 말씀이냐고 여쭙자 연암이 한 설명은 이렇다. "오채색을 문장이라고 하잖니. 검붉고, 파랑, 노랑, 잿빛인 새의 빛깔이 보이느냐. 이것이 오채색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니 저 새가 곧 문장이다. 더욱이 펄펄 살아 날잖니. 문장으로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옛것을 맹종하는 의고주의(擬古主義) 문풍에 반기를 들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를 주창한 연암의 생기발랄한 감성과 의식이 잘 드러나는 장면으로, 종채가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과정록'에 나온다.

연암선생송하노송청폭지도. 연암의 그림이다. 푸른역사 제공
이 얘기가 소개된 당신, 연암은 조선 최고의 문호이자 실학의 거봉인 연암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평전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과정록'을 쓴 종채를 비롯해 11명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묫자리를 놓고 연암과 싸워 원수지간이 된 당대의 문장가 유한준, 연암의 문풍을 적대시하며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킨 정조 등 그 시선들은 다양하다. 연암을 둘러싼 당대의 시시비비와 후대의 평가가 제대로 어우러져 조명돼야 연암의 인물상을 객관적으로 빚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지은이의 전략적 배치다.

연암의 혁신 사상과 문풍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할 때 이웃 함양군수는 "연암이 오랑캐 풍습을 조장한다"는 헛소문을 한양에 퍼뜨렸다. 흰옷을 입고 일하기 어려워 옷 가장자리에 검은 헝겊을 댄 학창의를 만들어 입은 것과, 청나라에서 배운 방식대로 제작한 벽돌로 정각을 신축한 것에 대한 모함이었다. 하지만 연암은 "꿈에 중을 보면 문둥이가 된다(쓸데없는 것으로 엉뚱한 것을 생각한다는 속담)"며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암의 대인적 품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암의 호방하고 해학적인 면모가 담긴 또 다른 일화 하나. 양양부사를 지낸 연암에게 사람들이 녹봉이 얼마였느냐고 자꾸 물었다. 이에 연암은 "금강산에 맞서지요"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의아스러워하면 "바다와 산의 빼어난 경치가 만 냥이요, 고을 봉급이 또 이천 냥이니 그야말로 금강산 일만이천 봉과 맞서지 않겠소"라며 웃어 넘겼다.

연암은 왕실 일가붙이의 비호하에 호가호위하다 관속을 때려 죽인 중을 징벌하려고 강원감사에게 보고했다가 거부당하자 미련없이 양양부사 직을 내던졌다. 이에 대한 아들 종채의 평 또한 넉넉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의 직업은 독서인이었으니 이만하면 부업치고는 괜찮은 삶인 듯도 싶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