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독자리뷰

2011. 5. 9. 11:27간호윤의 책들/아름다운 우리 고소설(2010년)

 

책을 출간한 이치고 독자들의 반응에 촉각을 세우지 않는 이는 드물다. 가끔씩 이런 독자를 대하면 여간 기분이 좋지 않다. 독자의 수준은 독후를 풀어가는 감상 두어 줄만 붙따르면 담박 안다. 이런 독자와 만남은 저자로선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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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향기를 가까이 하다.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을 읽고...) | 책을 읽고... 2010-10-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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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꼭 읽어야 할 화제의 도서 리뷰 대회 참여
[도서]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간호윤 저 | 김영사 | 201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읽을수록 재미있고 감칠 맛나는 이런 책이 어디서 톡~ 튀어 나왔을까? 가히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천일야화만큼이나 재밋는 우리 옛날 '니야기'가 은은한 옥(玉)마냥 책 칸칸이 숨겨져 있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그 고아함에 눈이 즐거운 책이다. 근래 서권기 문자향(書卷氣文字香)나는 책을 보기 힘들었는데, 가히 책에서 느껴지는 청고고아(淸古高雅)한 기운으로 마음이 상쾌해지고 저자에 대한 존경이 절로 우려나온다. 우리네 선조들의 여유와 해학이 이정도 였음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840쪽짜리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도 지루하거나 쓸데없는 잡설이란 생각조차 하지않은 대단한 책이다.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간호윤 박사의 20년 연구를 집대성하였다는 이 책은 표지에서 "이야기에 웃고, 이야기에 울던 옛사람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며 지향적 명제를 제시하고는 "한국인의 삶과 사상에서부터 문화와 역사, 민중의 희로애락까지 한 권으로 꿰뚫는 우리 고소설의 모든 것" 이라는 상투제목(precede)을 달았다. "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찬 한국 고소설 천년의 세계" 부제(deck)와 어울려 제 가치를 인증하는 명징한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책은 다섯마당(고소설론, 작가론, 작품론, 배경론, 문화론)으로 나뉘어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정신과 문화, 그 향취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참으로 옛사람의 풍류와 사랑과 열정이 지금의 우리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농밀한 모습으로 살아오른다.

 

한 마당 고소설론은 소설이 아닌 론(論)인데도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을까! 간박사의 연구와 사고가 마치 능청스러운 입담처럼 긴장감을 풀게하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소설사 4대 사건'은 마치 르포기사처럼 시대의 여백을 소개하고 있다. '고소설 주요 배경지와 관계지역'이나 '고소설 주요 배경·집필·판각 지역'을 지도로 보여주는 연구물은 전공자가 아닌데도 한 눈에 그 의미를 알아챈다. 세책본과 방각본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는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가는듯한 읽을거리에 눈을 부릅뜬다. 왜냐고? 음란서생의 포스트가 보이므로... 고소설 관련용어도 흥미 그 자체이다. 강담사, 전기수, 책괘, 책비, 책사, 서사, 녹책, 전책 등 딱딱할 수 밖에 없는 용어 설명을 어떻게 이리 감치게 풀어갈 수 있는지, 간박사의 연구와 필력이 어우러진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소설계의 중요인물'편만 하나의 책으로 엮어도 팔리는 책이 될 듯 흥미롭다. 특히 '고소설을 최초로 정리한 김태준'의 삶은 암울한 근세와 현세에 걸쳐 민중적 의식으로 살다사라져간 한 천재의 아픔이 안타까움으로 전해져온다.(그는 공산주의자로 지리산 빨치산들을 대상으로 특수 문화 공작을 하다가 국군토벌대에 체포되어 1949년 11월 총살되었다).

 

'고소설 4대 작가'로 시작하는 두번 째 마당 '작가론' 또한 수준 높은 읽을거리로 기억된다. 김시습, 김만중, 박지원, 김소행이다. 앞의 세 분은 학창시절 짧은 국문학사에서 들은 이름이지만 '죽계 김소행'에서 그 생소함에 시간을 들여 한번 더 읽어본다. 서출 출신의 비통한 슬픔과 울분으로 마초적 소설 <삼한습유>를 썼다고 되어 있는데 그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폭넓은 역사적 조망과 박식함, 소재의 확장, 문체의 현란함이 돋보이는 장쾌한 스케일의 한문 장편소설로 눈맛이 여간 아니라고 하니 한번 찾아 읽어볼 일이다. 이 소설은 중국에 수출한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세 마당 작품론에서 우리나라의 고소설이 몇편인지 묻는다. 총 859종이지만, 이본이 많아 4천 편에서 기만 편까지 추정하고 있다. 그 중 금오신화, 설공찬전, 임진록 등 '별쭝난 고소설'(별쭝나다: 말이나 하는 짓이 아주 별스럽다.)은 일종의 요약설명으로 연구노트를 보는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패러디소설 <상사동기>였다. 젊은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마치 애잔한 국악 한 가락을 듣는 듯이 가슴을 파고든다. 재미있는 물음도 있다. 우리 고소설 중 현대 작가들이 가장 패러디를 많이 한 소설은? '허생전'이다. 악인형 주인공이 등장하는 <강로전>이나 여인들의 미모전쟁을 다루는 <투색지연의>도 관심을 끄는 소설이다. 최고의 품격소설로 꼽은 <구운몽>을 초 3때 몰래 읽고 잠을 설친 조숙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최고의 로맨스 소설은 당연히 <춘향전>이다. 대학 때 얌전한 춘향전이 아닌 애로틱 춘향전을 찾아 읽던 그 대목을 찬찬히 또 읽어본다. 그 누가 고소설이 재미없다 했던가? 춘향전과 변강쇠가 이 부분(378~381쪽)을 읽어보라. 그 대담함에 절로 민망해 질것이니... 최고의 군담소설 겸 베스트셀러는 <조웅전>이라는데 읽어본 기억이 없다. 대신 애로틱 소설로 꼽은 <주장군전>과 <관부인전>은 어릴 적(?) 읽었으니 조숙하긴 했나보다. ^^ 이외에도 정말 재미있는 고소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본으로 본 국문소설과 한문소설 베스트 10에 꼽히는 고소설은 필독이라할 정도로 읽을거리다.

 

네 마당 배경론은 그동안의 국문학과 관련된 나의 지식을 테스트한다. 최초의 국문소설은 <설공찬전>인가 <홍길동전>인가? 섣부른 지식에 길들어진 난 설공찬전이 발견될 때의 신문기사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많은 헛점이 있음을 간박사는 지적하고 있으며, 그의 첨언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은 <오륜전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안계가 넓혀진다. '고소설 속 최고의 추녀와 추남은?', '고소설 속 불한당들은?', '고소설에서 악인과 선인의 결말은?' 등 11 항목의 흥미꺼리로 두꺼운 책이 가질 수 있는 지루함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당연히 고소설에 나오는 전법이나 도술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으나 등장설명 뿐인 밋밋함에 약간 아쉬움을 느낀다.

 

다섯 마당 문화론에서는 '속담이 된 고소설'을 훝고 지나가자, '그림이 된 고소설'의 컬러풀한 그림들이 활자에 지친 눈에 활기를 준다. 여덟 폭 병풍에 대한 설명이 바로 소설이다. 명성황후가 간직했다는 자수 <춘향전도>에서 눈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단아한 춘향과 꽃미남 몽룡의 여유롭고도 몽환적 러브스토리가 풍요한 가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소설이 되고 한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놀이가 되고 설화가 되고 창가가 되고 가사가 되고 굿과 탈춤이 된 우리의 고소설은 어쩌면 너무나 친근하게 가까이 있어 그 중요성을 잠시 망각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저 시절 니야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저자는 <춘향전>의 후언으로 맺음말을 마무리 한다. "책 보는 법이 책을 다 보앗스면 무슨 감상이 이서야만 인간이라 하는데 여러분 이 책을 보고 감상이 엇더하오."
참으로 "천 년의 향기를 머금은 고소설에 관한 모든 것!"이란 카피가 어울린다고 답을 하고 싶다. 분야의 전문가가 더욱 심도있게 판단할 터이지만 이만한 연구물이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써 낸 간박사의 필력과 노고에 감탄의 박수를 아니 보낼 수가 없다. 너무나 두꺼운 책에 눌린 분들에겐 들머리글인 '독소문답'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글빨에 스려있는 농밀함에서 간박사의 심오한 내공이 어떻게 풀어질 지 단박 알 수있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구수하고 맛있는 된장국을 먹은 듯 개운하고 깔끔한 책읽기였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