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라도 수박과 주인 무는 개 이야기>

2023. 9. 22. 18:37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능라도 수박과 주인 무는 개 이야기>

 

‘수박은 쪼개서 먹어 봐야 안다’는 속담이 있다. 딱 맞다. 겉과 속이 이토록 다를 줄 몰랐다. ‘수박!’ 누가 별칭을 지었는지 모르나 참 잘도 지었다. 그래 ‘수박 겉 핥기’로나마 ‘능라도 수박과 주인 무는 개 이야기’를 적어본다.

 

여름철도 지났는데 수박들의 기세가 자못 호기롭다. 이 정권에게는 말 한 마디 못하면서 자당 공격하는 것은 ‘연희궁 까마귀 골수박 파 먹듯’ 집요하더니 기어이는 어제 사달을 내고 말았다. 연희궁은 연산군이 놀던 곳이요, 골수박은 해골 같은 수박 찌꺼기다. 연희궁에서 쏟아져 나온 수박 찌꺼기 먹는 까마귀를 보고 빗대어 이른 말이다.(<연산군일기>를 보면 폭군 연산군은 수박을 꽤 좋아하였다. 중국에서 수박 수입하라는 기록이 여러 차례 보인다.)

 

우리나라 수박 수입은 허균(許筠)이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 그 유래가 보인다. 허균은 수박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서과[西瓜,수박]: 고려 때 홍다구가 처음 개성에다 심었다.….” 홍다구(洪茶丘,1244~1291)의 조부는 홍대순, 아버지는 홍복원으로 3대에 걸친 매국노 집안이다. 홍다구 조상은 대대로 인주(麟州, 오늘날 평안북도 의주군)를 관할하던 수령이었다.

 

1218년 몽고의 침입 때 홍대순은 자진하여 그들에게 협력하였다. 홍복원은 한술 더 떠 몽고의 앞잡이가 되어 조국인 고려를 침공하였으며 후일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해 원나라로 도망쳤다. 홍복원은 고려 사람들을 꽤나 못살게 굴었기에 ‘주인을 무는 개[養犬反噬其主,기르는 개가 도리어 주인을 물다]’라 하였다. 홍다구는 몽고에서 태어났다. 자라서는 원나라 중심 세력으로 고려에 들어와 김방경을 모함하는 등 조국을 무시로 괴롭혔다.

 

이 홍다구가 처음 수박 심은 곳이 개성이었다. 수박은 세월이 흐르며 전국으로 퍼졌고 ‘수박 겉 핥기’, ‘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 ‘수박 흥정, ‘선 수박의 꼭지를 도렸다: 그냥 둘 것을 손대서 못 쓰게 만들었다는 말’ 따위 속담까지 생겨났다.

 

그 중, ‘능라도 수박 같다’는 속담이 있다. 맛없는 음식을 이른다. 수박은 당도로 맛을 가늠한다. 그런데 능라도는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 위치한 섬이다. 장마철이 되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긴다. 당연히 수분을 너무 빨아들여 당도가 떨어져 맛이 없다.

 

요순시절 빼고 ‘사람들이 어울렁더울렁 사는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지금이나 예전이나 하늘은 걸(桀)이니 주(紂)니 불한당들을 잘만 돕는다. 오죽하면 ‘걸나라 개는 요임금을 보고도 짖는다.’고 하였다.

 

2023년 수박철이 지난 9월 22일, ‘능라도 수박과 주인 무는 개 이야기’를 쓸 줄 몰랐다. 생각해보니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왔다. 언젠가 한 주막집에서 ‘능라도 수박’을 먹다가 개에게 던져 주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