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⑭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6) <북학의>, 우리나라 사람은 아교와 옻 같은 속된 꺼풀이 덮여 있다

2021. 8. 17. 11:16신문연재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⑭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6) <북학의>, 우리나라 사람은 아교와 옻 같은 속된 꺼풀이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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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⑭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6) <북학의>, 우리나라 사람은 아교와 옻 같은 속된 꺼풀이 덮여 있다 - 인천일보

“무너진 나라 바로잡아야. 국민 선택 위해 최선.” 코로나 19의 위세가 가히 위협적이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진화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만든 백신은 영 맥을 못 춘다. ‘음력 칠월 기우는 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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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6 17:51

수정 2021.08.16 17:54

2021.08.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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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힘든 외국인 공무원 채용, 정조에 설파

 

▲ 김내혜 전각 작가의 박제가 호 '초정(楚亭)' 전각. 김내혜(1959~) 작가는 안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각의 획이 섬세하고 고아하여 돌에 피어난 꽃과 같은 게 특징이다. 현재 '돌꽃 전각갤러리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 개인전으로 '돌꽃 틔움전', '딕테전', '조선 실학인장전' 등 수십 차례를 열었다.

“무너진 나라 바로잡아야. 국민 선택 위해 최선.” 코로나 19의 위세가 가히 위협적이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진화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만든 백신은 영 맥을 못 춘다. ‘음력 칠월 기우는 해에 검정 소뿔이 빠진다’더니 8월 염천(炎天)까지 부추긴다. 이 시절, 어느 언론에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된 저 “무너진…” 운운의 대선 후보자 출마 변을 본다는 것은 고역이다. 참 콧굼기가 두 개이기에 천만다행이다. 이 나라는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땅도 사람도, 다만 권력을 쥔 이들만 바뀌었고 바뀔 뿐이다. 그리고 어떻게 무너진 나라를 제 한 몸으로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말[言]을 짜장 말[馬] 부리듯 입찬소리를 해대는 그 재주와 자신을 영웅시하는 망령된 행동에 기함할 노릇이다. 대통령은 5년간 잠시 국민의 힘을 대의(代議)한 공복(公僕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더욱이 내 부모에 조부까지 과도하게 신화를 만들고 온 가족이 4절까지 애국가를 부르는 사진을 읽고 보자니, 독재나 왕조, 전체주의가 연상되어 식겁할 따름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저런 ‘잡설(雜說)’을 기사라 대서특필한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헌법 1조1항이 당혹스러울 판이다. 심화(心火)가 절로 나는 이 시절이다.

저 시절, <북학의>에서도 탁견 중 탁견인 장론(葬論)을 읽는 것은 그래 상쾌하다. 선생의 말을 수굿이 경청해보자.

“대체로 수장(水葬)·화장(火葬)·조장(鳥葬)·현장(懸葬)을 하는 나라에도 사람이 있고 임금과 신하가 있다. 따라서 오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출세를 하거나 못하거나 흥하거나 망하거나 부자가 되거나 가난뱅이가 되거나 하는 것은 자연스레 나름의 이치가 있는 것으로 사람의 행동에 관계되는 것이지, 장지로 인해 그렇다 이러쿵저러쿵할 게 못된다.”

선생은 매장 문화의 폐단을 심각하게 인지하여, 시신을 물에 넣는 수장, 불에 태우는 화장, 새에게 쪼아 먹히게 하는 조장, 심지어 시체를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장례법인 현장까지 제안한다. 풍수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대담한 선생의 논조는 이렇게 이어진다.

“식당자(識堂者, 중요한 지위나 직분에 있는 사람)는 마땅히 그러한 잡서를 불사르고 그 술수를 금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길흉화복이 풍수와 무관함을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한다. 그러한 연후에 고을마다 각각 산을 하나 정하여 그 씨족을 밝히고 북망산(北邙山, 북망산은 원래 중국 허난성 뤄양시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다. 뤄양은 주나라와 후한을 비롯한 서진_북위_후당 등의 도읍지였고 죽은 귀인_명사들을 북망산에 묻었다) 제도같이 일족이 한곳에 묘지를 쓰도록 한다.”

우리나라 매장 문화(산소)는 북망산 가던 죽은 자를 소환하여 영생불사를 부여하고 비석, 상석 등 석물(石物)을 세워 그 위계질서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 엄존케 하는 상징물 아닌가. 선생은 또 각 고을에서 산을 하나 정해주고 한 집안의 묘를 이 산에만 쓰자고 하였다.

21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 장례 문화는 매장에서 화장 중심으로 바뀌고 각 집안별로 납골당을 만드니, 선생의 ‘장론’이야말로 우리 장례 문화의 오래된 미래이다. 이 시절, ‘잡설’을 듣다가 저 시절, 장례 문화의 혁파를 주장한 선생의 ‘쾌설(快說)’을 읽자니 언필칭 “쾌재로다!” 무릎을 친다. 선생이 이런 제언을 한 이유는 ‘길흉화복이 풍수와 무관’하다는 실학적 사고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래 글에는 사대부에 대한 선생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선생은 놀고먹는 양반들을 좀벌레[두(蠹)]에 비유하였다. 그러고는 사족(士族)에게 장사하고 무역을 하게 하라고 한다. 지금이야 ‘돈이 제갈량’이라는 속담처럼 물질주의가 판을 치지만, 저 시절에 양반들은 상행위를 가장 속된 모욕으로 여겼다. 사족에게 장사를 시키라는 발언을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만큼 위험한 행위였다. 더욱이 아래 글은 임금 앞에서 한 말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면 의미가 지대하다.

“병오년 정월 22일 조회에 참석했을 때 전설서 별제(典設署別提) 박제가가 느낀 생각: 신이 들으니 중국 흠천감(欽天監, 중국의 천문대)에서 책력을 만드는 서양인들은 모두 기하학에 밝으며, 이용후생의 방법에도 능하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관상감에 쓰는 비용을 들여 그들을 초빙하여 대우하고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지구_달_별들의 움직임, 각종 도량형, 농업과 상업, 의약,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는 방법, 건조와 누습의 적절함, 벽돌을 만들어 궁실이나 성곽_교량을 만드는 방법, 구리나 옥을 캐고 유리를 굽는 방법, 외적 방어를 위한 화포의 설치 방법 등을 배우게 한다면 몇 해가 못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알맞게 쓸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입니다.”

이 또한 장론 못지않은 선생의 탁견이다. 홍대용도 중국에 가서 저 흠천관을 찾아 관리로 근무하는 유송령과 포우관 두 독일인을 만나고 왔다. 선생은 기술이 앞선 이러한 서양인들을 초빙하자고 한다. 사실 지금도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저 시절 선생은 이러한 주장을 정조 임금 앞에서 설파하였다. 선생이 설파하는 흠천감 이하, 다양한 방법들을 조정에서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우리의 역사는 지금과는 완연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필자의 억측만은 아닐 듯하다.

선생의 도도한 웅변은 계속 이어진다. ‘사기삼폐설’(四欺三弊說) 중 사대부의 기만이다. ‘사기’는 자기를 속이는 네 가지 행위고 ‘삼폐’는 세 가지 폐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7회에 계속한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_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