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6. 11:05ㆍ간호윤의 책들/사이비2(2019년)
<사이비>2 가 곧 출간된다. 사이비는 잡문집이다. 출판사에 머리말을 넘겼다.
<머리말>
연암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남을 아프게도 가렵게도 못하고, 구절마다 쓸데없이 노닥거리기만 하고 이런들 저런들 흐리터분하다면 이런 글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言不痛不癢 句節汗漫優柔不斷 將焉用哉)”(박종채,『과정록』)”
글쓰기는 내 마음의 치료제요, 해원(解寃)의 도구이다. 자음과 모음이 내 마음속의 저러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족집게처럼 짚어내 내 순간과 일상의 몰입을 적바림할 때면, 글은 내 속을 알아주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요, 가장 무한한 고독을 치료하는 의사요, 가장 절대자다. 이럴 때 내 서재 휴휴헌은 하나의 장쾌(壯快)한 우주가 된다.
허나 늘 이런 것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가슴속에 분명 바글바글 대는 그 무엇이 시궁창 거품처럼 들끓어도 글이 겉도는 경우도 있다. 엊그제까지 그렇게 동심협력하던 글자들이 그렇게 냉정하고 비정할 수 없다. 나를 데면데면 보는 게 내 생각과 잡동사니는 등가교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때면 글은 비참이요, 우울이요, 폭력이요, 악다구니를 억세게 퍼붓는 게 열흘 장맛비보다도 흉하다. 이럴 때면 내 휴휴헌은 그야말로 정녕, 짜장 난장판이다. 생각은 현실이란 코르셋에 갇혀있고 사고는 미래라는 미늘에 걸렸다. 자음족과 모음족 사생아인 기기묘묘하게 생겨먹은 책벌레들이 쏴! 쏟아져 나와 물고 뜯는다.
외주 준 인생은 망자의 미래이다.
갈(喝)!
이 모두 글 공덕 모자란 소치 아니런가.
그럼 몸 공덕이라도 하자.
품이라도 팔아보자.
들메끈 조여 매 듯, 옷섶 여민다.
내 ‘댕돌같은 글’은 못쓸지라도 ‘맹물에 조약돌 삶은 글’만은 쓰지 말자.
2019년 3월 12일 휴휴헌에서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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