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3일 오후 12:01

2013. 1. 13. 12:04연암 박지원 평전





뻔한 소리? 뻔한 것의 힘

인간은 존엄하다는 5명의 저자

국제신문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2013-01-11 19:22:23
/ 본지 14면

거름이 꽃을, 더욱 향기로이 싹틔우듯, 삼류는 일류를 꽃피우는 비타민이요, 거룩한 두엄이다. -'세상의 거름, 삼류(43p) 중'






- 토로 대신 풍자·문학적으로 쓴
- 3류 위한 사회학·인문학 칼럼들

- 삼류/조은산 외 지음
- 다연/1만5000원

다섯 명의 저자가 쓴 삼류는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 같은 사람임에도 재산 집안 피부색 아이큐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들로 차별받아야 하는가. 왜 일류는 이류를, 이류는 삼류를 경멸하고 짓밟는가.

'뻔한 소리'는 사람을 답답하게도 지치게도 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부조리를 새삼스럽게 되새겨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신통한 해결책은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도 안다. 하지만 이들은 천연덕스럽고 우직하게 '물고기가 보이지 않아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강태공처럼' 이 근본적인 불합리가 의아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같이 생각해보자고 설득한다.

독특한 건 글의 논지보다는 방식이다. 삼류의 울분을 토로하는 대신 풍자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삼류의 사회학·인문학, 그도 아니면 '삼류를 위한 변'이라 부를 만한 칼럼을 이어간다.

한 저자는 '삼류'라는 말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배경에 주목한다. 일류, 이류, 삼류라는 말은 마치 사회라는 경쟁구조 속에서 능력대로 공정하게 분류된 것 같지만 철저히 일류 중심으로 운용되는 사회에서 이는 핵심을 숨기는 속임수다. 수준 높은 사교육을 받은 부유층 자녀와 동네 학원 다니기조차 힘든 서민층 자녀에게 '동일한' 시험 기회를 부여한다고 해서 이를 기회 균등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회는 이를 두고 공정경쟁이라 말하며 여기서 패배한 서민층에 삼류라는 낙인을 찍는다. 물론 가뭄에 콩나듯 일류로 진입하는 삼류가 있는데, 체제는 이 전설을 양껏 홍보하며 공정사회의 증거로 둔갑시킨다.











삼류가 삼류를 더 경멸하는 웃지못할 세태를 비꼬는 글도 있고, 자신을 삼류라 칭한 희대의 천재들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다. 삼류라는 벽 안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꿈을 좇으라고 격려하는 글도 있고, 꿈을 좇아 큰 발전을 이룬 사람들조차 '너는 원래 삼류였다'고 배척당하는 현실에 대한 통탄도 있다.

어쨌든 다섯 명의 저자가 각각의 지식과 경험을 각각의 문체로 풀어내며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로 귀결된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존엄하다는 것. 어떤 사회적인 기준도 이 근원적인 명제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직 국어교사이자 한옥 목수인 작가, 풍자에 능한 시사만평가, 식물을 사랑하는 시인, 고전문학 강사, 산골 수몰민 출신 서예가 등 다양한 이력의 저자들이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