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2012. 3. 26. 18:28인하대/고전산문교육론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정약용

순조 10년(1810) 경오년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가득차고 점점 번식하여 산골에까지 득실거렸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얼어죽지(凍死) 않더니 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파리 소탕전을 펴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혹은 파리 통발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그 약기운에 어질어질하게 하여 섬멸하려 했다.

나는 말하였다.

아아! 이는 죽여서는 안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변한 몸(轉身)이다. 아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와 쌀이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과 새 추깃물이 괴어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항하(恒河:인도 갠지스강의 한자이름)의 모래보다도 만배나 많았는데,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아! 이 쉬파리가 어찌 우리 인간의 무리(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모여들게 하니 서로 연락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수북이 담은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덩굴이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도 허물어지고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밭에 난 강아지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이 내려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잡초만 우거지고 쓸쓸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허기진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만이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 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놓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말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아전들이 붓대 잡고 그 얼굴을 살펴본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고작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符同?:몇 사람이 어울려서 한통속이 됨, 원문은 그냥 同)하여 공로(功)를 아뢰면 가상(嘉) 히 여겨 꾸짖지(譴)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굶어죽어가는 자를 구제하기 위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파하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눈썹이 아름다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 남아돌아도 그대는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관청)으로 들어가지 말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벌려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깃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밀가루에 꿀·참기름을 넣고 반죽한 뒤 1.5㎝ 두께의 직사각형으로 썰어 기름에 반쯤 익힌 것이다. 제사용으로 쓰이며 꿀이나 조청에 담가 두지 않고 먹을 때 석쇠에 굽는다.)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작은 냄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숯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고, 역마를 달려 여리(閭里)가 편안하다고 치보(馳報:급히 달려가서 알림)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죽은 이의 넋이 살아 돌아오는 것)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無知,長) 혼혼(昏昏:정신이 흐리고 가물가물한 모양)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殃:지은 죄의 갚음으로 받는 온갖 재앙)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걷어차는데, 호령 소리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주릿대로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 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까옥거리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들어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포악한 행위를 아뢰지 않고는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것 =[강어(强禦)?를 겁내지 말고(不吐)? 시비가 없다(無是非只)?] 해와 달이 밝게 비치어 그 빛을 휘날리니, 정사를 펴서 인(仁)을 베풀고 신명에 고함에 규(圭:왕과 제후가 천자를 뵐 때 지니던 예물)를 쓴다. 천둥같이 울려 임금의 위엄을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 익어 백성들의 굶주림도 없어지리라. 파리야, 그때에 남쪽으로 날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