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선생에게 배우는 글쓰기

2008. 9. 19. 15:00인하대/글쓰기와 토론


 


글쓰기 참 어려운 일이지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 수업을 하며 골머리깨나 썩을 겁니다.

아래 글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아래 글은 목은 이색(李穡,1328~1396) 선생의 『목은문고(牧隱文藁)』(권 12)에 나옵니다.

객과 선생이 글쓰기에 대해 주고받는 내용입니다.


먼저 객이 선생에게 글쓰기에 대해 물으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말할 것은 반드시 말하고, 반드시 쓸 것은 반드시 쓰는 것, 이뿐이다(必言必言, 必用必用, 止矣.)”

그 다음에 대해 묻자,

“말이 멀어도 가까운 것에서 보충하고, 씀이 실제와 멀어도 혹 바른 이치를 따를 수 있다(言遠矣, 或補於近, 用迂矣, 或類於正.).”

또 그 다음을 물으니,

“말은 반드시 다 말하지 말며 써야할 것이라 하여 반드시 다 쓰지 말아야, 또한 참이 아니겠는가?(言不必言, 用不必用, 不亦傎乎?)” 

또 무엇을 선생으로 삼아야 마땅하냐고 물으니, 선생이 말씀하셨다.

“선생은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책에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깨달아 안다’라 함은 요임금과 순임금 이래로 고치지 않았느니라(師不在人也, 不在書也. 自得而已矣. 自得也者, 堯舜以來, 未之或改也.)”

십여 년이 지났다.

묻는 자가 사례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이 옳더이다. 종신토록 행하겠습니다.”

동자가 곁에 있다가 그 연유를 묻기에, 기록하여 ‘문답(問答)’이라 칭하였다.


원문) 問爲文, 先生曰. 必言必言, 必用必用. 止矣. 問其次, 言遠矣, 或補於近, 用迂矣, 或類於正. 又問其次, 言不必言, 用不必用, 不亦傎乎。又問宜何師, 曰. 師不在人也, 不在書也. 自得而已矣. 自得也者, 堯舜以來, 未之或改也. 旣十餘年矣。問者謝曰, 先生前言是矣. 請終身行之. 童子在傍, 問其由, 錄之曰答問.

<牧隱文藁> 卷之十二

* 자득(自得): 스스로 깨달아 얻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나는 이색 선생의 글쓰기 핵심을 둘로 요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첫째, 써야할 것이라 하여 반드시 다 쓰지는 말아라.

둘째, 글쓰기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저자의 생각을 모두 풀어 놓지 않는 글쓰기입니다. 여운을 독자의 몫으로 남기라는 의미입니다. 독자에 대한 배려는 결코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적당히 감춤’에 있다는 의미로 읽은들 무리는 없을 겁니다.

둘째, ‘글쓰기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함은 글쓰기를 결코 ‘배운 대로 따르지 말라’는 의미로 새기고 싶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배운다’함은 ‘모방(模倣)’, 혹은 글이나 그림 따위를 그대로 옮기어 베끼는 ‘전사(轉寫)’와는 판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온고(溫故)’는 ‘창신(創新)’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어야 합니다. 답습(踏襲)은 ‘비슷한 가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 힘겹지만 ‘간호윤 식 글쓰기’, ‘000식 글쓰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색 선생이 말하는 ‘자득(自得)의 글쓰기’가 아닌가 합니다.


2008. 9. 17.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