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6. 08:46ㆍ신문연재/복지신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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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13)
(13) 그런데, 이제 또, ‘이승만 동상’을 세워야 하는가?
영욕이 교차하는 이승만의 삶
“김건희 여사, 한인기독교회 찾아 이승만 잊힌 위업 재조명” 기괴한 윤석열 정부 권력서열 1위(?)라는 저 여사의 이런 기사 때문인가? 때아닌 ‘이승만 동상 건립’ 운운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래 얼마 전 지인이 보내온 책이 생각났다. 여러 사람이 쓴 책으로 ‘미주 한인 역사 120주년 기념’이란 부제가 붙었다. 그중, 이승만(李承晩,1875~1965)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을 읽다가 한참 동안 눈길이 멈췄다. 글을 보면 이승만은 1904년 8월 9일, 조선에서 5년 7개월의 투옥 생활을 끝냈다.(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황제 퇴위 음모에 가담하였다고 한성감옥에 투옥시킨 사건이다.)
석방된 이승만은 밀서를 갖고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1882~1945)를 만나러 1904년 12월 31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1905년 1월 5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했다.(밀서를 갖고 간 임무는 실패하였다.) 그러고 대뜸 1907년 6월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나온다. 2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1907년 9월 하버드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1910년 2월에 학위를 받는다. 그런데 졸업 전인 1908년 9월에 프린스턴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석사과정 1년 만에 졸업도 안 한 학생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입학을 허가하였다는 믿지 못할 기록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1년 9개월 뒤인 1910년 6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1910년 2월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인 1910년 6월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력이다. 어찌 되었건 이승만은 미국에 건너온 지 5년 6개월 만에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는 전설 같은 사실(事實)이다. 이런 글을 만나면 참 난감하다. 아무리 100년 전이요, 또 그것이 타국이라 하여도 사실은 정확히 기술해야 한다. 실증을 중시하는 미국의 학력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아무런 실증적인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의문도, 해석도 없었다.
난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삶을 욕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전기적(傳記的) 사실은 정확한 기록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시 ‘박사(博士)’가 없었던 한국이기에 이승만은 ‘박사’의 대명사가 되었고 내 또래만 하여도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이승만 박사’라 부르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학자라면, 글 쓰는 이라면, 이 정도는 독자를 위해 자료조사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견문이 좁아서인지 나는 아직 ‘이승만 박사’에 대한 사실(事實)을 사실적(査實的,사실을 조사하여 알아봄)으로 기술한 책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 다 알듯이 이승만의 삶은 영욕(榮辱,영예와 치욕)이 교차한다. 그의 관운(官運)은 대단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대한민국 초대, 2대, 3대 대통령을 지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은 1925년 임시의정원(지금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위원회에서 탄핵으로 물러났다. 이때 그는 미국에 있었고 사유는 ‘미국에 대한민국을 위임통치하라는 청원서를 썼다’는 이유였다. 이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라 치를 떨었다.
해방이 되자 돌아온 이승만은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실시한 정부통령 선거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이후 두 번이나 개헌을 감행하며 ‘독재자’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반민특위 해체(1949.6.6),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 암살사건(1949.6.26.) 등 반민족적, 반민주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독재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진 그는 ‘3.15부정 선거’를 통해 3선 개헌을 꾀했으나, 1960년 4.19혁명에 의해 망명길에 올랐다. 임시정부의 ‘탄핵’으로부터 38년 뒤 일이다.
이 이승만과 연(緣)이 있는 대학이 인하대학교이다. 1903년 인천항에서 하와이 호놀룰루 사탕수수 밭 노동꾼으로 102인이 조국을 떠났다. 이들을 모태로 1953년, 조국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대학을 세워달라고 피눈물로 모은 자금을 보내왔다. 당시 대통령이 이승만이었고 이 자금으로 세워진 대학이 바로 ‘순수 민족대학 인하’다. ‘인하’는 그 노동꾼으로 떠난 항구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를 딴 것이다. 이후 인하대에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지만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 속에서 인하대생들에 의해 철거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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