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5) 저주(咀呪): 약자의 유일한 무기

2023. 6. 7. 10:17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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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5) 저주(咀呪): 약자의 유일한 무기 - 인천일보

딱 1인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무지와 포악, 야만의 시대로. 1년 동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군사정권 시절로 후퇴했다. 사회는 분열, 문화는 퇴보, 경제는 빈부 격차로 암담하다. 국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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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인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무지와 포악, 야만의 시대로. 1년 동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군사정권 시절로 후퇴했다. 사회는 분열, 문화는 퇴보, 경제는 빈부 격차로 암담하다. 국민들은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매체는 그 행태가 매우 고약하다. '까마귀가 열두 소리를 내도 하나같이 좋은 소리 없다'더니 보도마다 정권에 아부놀음이요, 검찰과 경찰 행태는 공포 분위기 조성이니 '조주위학(助紂爲虐, 잔학한 주임금을 도와 포학한 일을 저지름)' 넉 자가 대형(大兄)으로 섬길 판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눈 가리고 귀 막고선 직수굿이 바보상자만 들여다본다. 마치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1909~1994)의 <코뿔소>를 보는 듯하다.

<코뿔소>는 부조리극(不條理劇, 절망적 상황을 그린 극)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느 시골 마을 광장, 여름의 푸른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일요일 정오 무렵이다. 갑자기 육중한 코뿔소 한 마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한복판을 굉음을 내며 달렸다. 그 뒤 코뿔소가 점차 늘어났다. '코뿔소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서다. 사람들은 하나 둘, 피부는 녹색으로 변하며 가죽이 되고 이마에 뿔이 나 코뿔소가 되었다. 마을은 추기경도, 귀족도, 소방수도,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가족도 사랑하는 연인도 친구도 코뿔소로 변했다. 홀로 남은 베랑제는 코뿔소가 되지 않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코뿔소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감이 감돌뿐이었다.'

코뿔소 한 마리가 마을 전체를 파괴하는 장면이다. <코뿔소>는 사람들이 비인간적 폭력을 저항 없이 추종하고 힘 있는 집단 편에 서서 안주하는 모습을 비판한 부조리극이다. 코뿔소 앞에서는 집단적 지성도 가치관도 인간성도 상실하여 정상과 비정상, 악과 선도 구별 못한다. 코뿔소를 만드는 '괴상한 병균'은 매우 빠르게 전파되었고 일단 감염되면 누구든 맹목적인 코뿔소 숭배자가 되었다. 인간에서 비인간이 되는 과정이 이렇게 단순하다.

<코뿔소>에 이런 내용이 있다. 논리학자가 노신사에게 문제를 낸다. “자, 다음 문제를 계산해보세요. 두 마리 고양이에게서 다리 둘을 없애면 각 고양이는 몇 개 다리가 남겠습니까?” 노신사는 “여러 개 답이 가능하겠네요”하며 끙끙 계산한다. “… 한 마리 고양이가 다리가 5개라면 또 한 마리는 다리가 1개겠지요. 두 마리 고양이 다리는 8개니 다리 2개를 없앤다면…” 고양이 다리 6개에 다리 없는 고양이까지 나온다.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대체 왜 고양이 다리를 자르고, 다리 없는 고양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논리학자는 엉터리 삼단논법의 예까지 든다. “모든 고양이는 죽게 마련이다. 소크라테스도 죽는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고양이다.” 그러자 노신사는 “소크라테스도 네 발 동물이 맞네요. 그럼 난 지금 소크라테스라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며 즐거워한다. 배움이 있건 없건, '코뿔소'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한 장면이다. 물론 이 두 사람도 코뿔소가 되었다.

작품은 마을에 단 한사람 남은 베랑제의 독백으로 끝난다. 베랑제는 코뿔소 흉내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메, 메, 브르르…이건 염소 우는 소리지 코뿔소 소리가 아니야! 그들의 뒤를 제때에 따랐어야 하는 건데. 이젠 너무 늦었어! 아! 난 이제 괴물이다. 괴물이야! …정말로 변하고 싶지만 이젠 안 돼. … 내 꼴은 너무 추해!” 정상인이 오히려 자신을 괴물이라 한다. 코뿔소 한 마리가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마을, 마치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2023년 6월 대한민국을 보는 듯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금전, 철포, 저주」에서 “아아! 우리 조선 사람은 왜 그리 저주성이 부족한지”하며 한탄하였다. 이 정부는 제 국민에게 저주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을 강개한 독립운동가로 살다간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였다. 단재 선생이 말하는 '저주(咀呪)'는 강자의 무기가 아닌, 약자의 무기였다. 선생은 저주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주란 무엇이냐? 갑이 을에게 심수(深讐,깊은 원한)가 있어 이를 갚으려 하면 힘이 부족하고 그만두려 하면 마음이 허락지 않는지라, 이에 그의 화상(像,얼굴을 그린 형상)을 향하여 눈도 빼어 보며, 그 목도 베어 보고, 혹 을의 이름을 불러 '염병에 죽어라, 괴질에 죽어라, 벼락에 죽어라, 급살에 죽어라!' 하는 따위가 저주다. 얼른 생각하면 백 년 동안 저주를 해도 저의 터럭 하나라도 줄이지 못할 듯하지만, 1인 2인 100인 1000인의 저주를 받는 자라면 불과 몇 년에 불꾸러미가 그 지붕 위에 올라가며, 새파란 칼날이 그 살찐 배때기를 찔러 신음할 새도 없이 사망하나니. 거룩하다! 저주의 힘이여, 약자의 유일 무기가 아니냐?”

그렇다. 제 아무리 강한 권력이 철포를 쏘더라도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밖으로 보면 중국 하나라의 걸(桀)왕과 은나라의 주(紂)왕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하지만 안으로 보면 이승만 하야, 박근혜 탄핵 정도이다. 단재 선생은 이 저주성이 조선 사람들에게 부족하다며 이렇게 탄식한다. “아아, 우리 조선사람은 왜 그리 저주성이 부족한지. 지난 역사를 돌아보건대 명분으로 우리를 속박하면 속박자에게 찬미한 이는 있지만 저주한 이도 있었더냐? 권리로 우리들을 살육하면 살육자에게 애걸한 이는 있지만 저주한 이도 있었더냐? 약한 여인이 모진 고통을 당해도 이에 대한 회답이 저주 없는 스스로 탄식만이 아니었더냐? 가난하고 또한 천한 자의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이 저주 없는 스스로 탄식만이 아니었더냐?”

선생의 말이 맞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네 삶을 유린한 자들을 저주한 게 있던가? 선생은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출현한 논문, 선언문 따위가 매양 애걸이 아니면 풍간(諷諫,넌지시 나무람)이요, 그렇지 않으면 기도라. 하나도 저주에 상당한 문자가 없었도다. 저주는 무력자(無力者, 힘 없는 자)의 행복을 구함이 아니다. 유력자(有力者, 힘 있는 자)를 불행하게 보는 것이다. 거룩한 저주는 금전의 농락에 빠지지 않으며 철포의 위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목적을 이룬 뒤에야 그 소리가 그치느니라.” 이미 이 나라에는 '코뿔소 바이러스' 경고등이 켜졌다. 약자의 유일한 무기여, 그것은 저주다! 포악한 자들에게 저주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코뿔소 떼를 막는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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