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3) 아메리칸 파이: 미국식 영웅주의

2023. 5. 9. 10:30카테고리 없음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3) 아메리칸 파이: 미국식 영웅주의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 어리석은 '아Q'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기 격으로 투전판에서 새하얗게 번쩍번쩍 빛나는 은화를 땄다. 그때 고의인지 우연인지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 '아Q'가 말려들고 어수선한 틈을 타 누군가 은화를 몽땅 털어갔다. 그러나 '아Q'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다. 늘 이유 없이 얻어맞고 패배할 때면 사용하던 기묘한 승전법이 있어서다. 역시나 '아Q'는 돈을 잃은 열패감을 금세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세차게 제 뺨을 때리는 행위였다. 왜냐하면 자기 뺨을 때린 게, 곧 돈을 훔쳐간 그놈을 사정없이 후려 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아Q식 승전법'이다. 루쉰(魯迅,1881~1936)의 소설 <아Q정전> 주인공 '아Q'이야기다.

이 나라 대통령이 5박7일 간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국빈답게 꽤 묵직한 보따리를 한 짐 지고 물 건너갔다. 돌아 온 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부부가 이번 국빈 방문에서 받은 선물은 과거 우리 정상들이 받은 장식품, 기념품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특별하다.”고 보도까지 내며 선물을 공개했다. '반려견 산책 줄, 레코드판 조각, 돈 맥클린이 서명한 기타, 빈티지 야구 물품 액자' 따위였다. 마치 영웅의 나라에서 돌아 온 영웅처럼 들고 온 보따리엔 겨우 파이 한 조각뿐이었다.

저 미국 땅에 가서 한 말이라곤, “정말 100년 전의 일들을 가지고 지금 유럽에서는 전쟁을 몇 번씩 겪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하는데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였다. 더욱이 '주어' 운운으로 워싱턴포스트기자와 오역 시비까지 벌이니, 보는 국민으로서 낯이 뜨겁다. 문제는 이 보도 사태가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래도 불러 '기립박수를 받았다', '절묘한 선택'이니 따위, 하 호들갑을 떨기에 찾아보았다.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한 소절이었다. 본래 이 노래는 가사가 상징과 은유요, 멜로디가 포크송[컨트리송] 비슷하며 8분이나 된다. 언뜻 들으면 예술성을 갖춘 노래인 듯하지만, 속내는 미국식 영웅주의가 깔려있다. 앨범 커버를 보면 엄지척인데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미국 영웅주의 운운은 인터넷을 구글링하면 나오니 생략한다.) 이런 기사를 써대는 언론 보도를 보자니 그야말로 고소를 금치 못한다.

한 나라 대통령이 타국을 방문한다면 그 목적이 피자 먹고 노래 부르러 간 관광이 아니다.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LA타임스 기자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는 당신의 정책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를 위한 중국과 경쟁에서, 핵심 동맹국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국 기자가 보기에도 꽤 딱하게 보였나보다. 오죽하면 이런 질문을 하겠는가. 급기야는 <노래 한 곡에 133조?>, <野 “윤석열 정부, 호갱 외교 자처해 한반도 안보 위협”>이란 기사가 나오더니 귀국하여서는 <야당 빼고 여당만 불러 방미 성과 자랑한 윤 대통령>이란 자막까지 보인다.

루쉰은 '아Q'를 통해 남이 시키는 대로 하고 남의 눈치만 보는 노예근성에 젖은 무기력함과 매사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민중들을 통박하고 있다. 루쉰은 “기절한 이 사람들을 깨워서 살려내야 할까? 깨어나면 더 고통스러울 테니 그냥 두어야 할까?”란 고뇌 끝에 <아Q정전>을 썼다. '아Q'는 놀림을 당하고 사람들이 그를 괴롭히며 변발을 잡아 땅기고 때려도 그 사람들을 향해, “벌레를 때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때? 난 벌레야, 이제 놔 줘!”한다. 그러며 “아Q는 자신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시하는 분야에서 '일등'이라고 생각한다.” 어처구니없게 '자기 경멸'이 '아Q식 승전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Q'는 끝내 죽는다. “혁명도 좋구나. 가증스러운 놈들, 모조리 엎어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강도들이 약탈하는 것을 혁명 사업으로 잘못 알고 그 주위를 얼쩡거리다 공범으로 체포되어 영문도 모른 채 총살당한다. 그 뒤, 민중들의 반응은 이랬다. “아Q가 나쁘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들 총살당했다는 것이 바로 '아Q'가 나쁘다는 증거였다.…총살이 목을 베는 것보다는 재미가 없다 했다. 게다가 그렇게 오래 거리를 끌려 다녔는데도 끝내 노래 한 마디 못 부르는 것을 보면 어떻게 돼 먹은 자인지 모르지만 정말 웃기는 사형수라며 자신들이 따라다닌 게 헛수고라는 것이다.” '아Q'는 왜 죽는지도 모르게 죽었다. 민중들도 그가 왜 죽었는지 알려하지 않는다.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민중들은 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이런 삶을 이지(李贄,1527~1602)는 「성교소인(聖敎小引)」에서 “참으로 한 마리 개였다. 앞에 있는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 짖어댔다.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그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웃을 뿐(眞一犬也 因前犬吠形 亦隨而吠之 若問而吠聲之故 正好啞自笑也已)”이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Q'가 강자에게 약하면서도 약자에게는 매우 모질게 군다는 점이다. 처지가 비슷한 날품팔이꾼과 머리를 잡고 사투를 벌이며 약해보이는 젊은 비구니를 마음껏 희롱한다. 엊그제 '근로자의 날', 한 분이 이 정권의 무차별적인 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을 하였다. 그는 유서에서 “대한민국을 바로 잡아 주세요.”라 썼다. 영웅주의 한 소절에 아Q식 승전법, 파이 한 조각, 한 마리 개, 그리고 저 이의 죽음이 마구 뒤엉킨다. “그 늙은 얘들은 위스키와 호밀위스키를 마시며(Them good old boys were drinking whiskey and rye) '오늘 죽도록 마셔보자'고 노래했지(Singing, 'This'll be the day that I die')” 사흘 연휴, 회색빛 하늘에선 때 늦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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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연달아 두 번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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