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을 보며

2023. 3. 17. 12:04글쓰기와 글 읽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을 보며

전형적인 열등콤플렉스라는 식민지 세균이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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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다시 읽는다. 20년 전 책꽂이 깊숙이 넣어 둔 책을 찾아 먼지를 턴다. 이 책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postcolonialism) 시대의 책 읽기’란 부제를 달았다. 제국주의들이 붕괴한 20세기 중반,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우리처럼 탈식민주의를 겪었다. 

 

식민지 백성들은 가면을 썼다. 제국주의를 닮으려는 처절한 생존방법이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몸에 각인된 식민지 기억[가면]은 시간이 지나도 불가역적 상흔으로 남아있다. 이런 식민지 백성들은 2차원적인 좀비가 된다. 한 차원은 피식민지 백성으로 한 차원은 식민지배 백성으로 자기 분열을 하여 정체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탈식민주의(脫植民主義)’ 혹은 후식민주의(後植民主義)’라 한다. 탈식민주의는 비판과 성찰을 통한 식민주의 극복 담론이요, 실천방법인 셈이다.

 

그 실천 주체는 둘로 나뉜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가 주체가 될 때, 탈식민주의는 피해자의 저항이 된다. 식민 지배를 한 나라가 주체가 될 때, 탈식민주의는 가해자의 반성이 된다. 프란츠 파농은 흑인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프랑스령(領) 마르티니크 섬 출신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식민 지배를 경험한 제3세계는 진정한 해방을 위해 몸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정체성(아이덴티티:Identity)’을 찾자고 역설한다. 피지배 검은 피부 흑인으로서 지배 민족인 하얀 얼굴 백인을 동경(憧憬) 하여 썼던 '하얀 가면'을 벗어버리자는 운동이다. 지금으로 부터 70년 전,1952년이었다.

 

이후 파농이 주장하는 ‘자기 정체성’ 운동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흑인 백인의 상호 호혜 평등으로 나아간다. 만델라가 흑인 만델라로, 하얀 가면을 벗고 검은 피부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정체성을 찾게 되고 탈식민주의가 완성된다. 제국주의 지배 이전의 자국 문화는 회복되었고 새로운 정부에 의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정체성이 살아나고 식민지 상흔엔 딱지가 앉았다. 여기에는 식미지배 국가의 철저한 자기 반성도 한몫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은 탈식민주의 문학으로도 나타났다.

 

이 책을 통해 본 저들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분열’이요, ‘식민지 민중 의존 콤플렉스’임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가해자인 일본은 피해자인 국가들에게 진정성 있는 반성 한 마디 없었다. 그래서일까? 저들은 아직도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여전히 몸에 각인된 기억으로 일본이 지배국가인 줄 아는 듯하다. ‘한 국가나 사회가 다른 국가나 사회에서 가해지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지배를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주체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행동하려는 주의’, 즉 탈식민주의가 저들에게는 아직 진행 중이란 사실이 매우 놀랍다. 

 

기차에서 구두 신은 채 앞 좌석에 발 올리는 행위, 함부로 말하는 폭언, 위협하려는 태도와 몸짓, 법을 빙자해 정적과 맘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안하무인 등은 검은 피부 식민지 백성이 하얀 가면을 썼을 때 하는 하는 일관된 행태들이다.

 

일본에 대한 저들을 볼 때, 아직도 저들의 몸속에서는 전형적인 열등콤플렉스라는 식민지 세균이 활동 중임을 증명한다. ‘하얀 가면’을 눌러 쓰고 일본‧미국에 대한 자발적 예속, 병리학적 증상인 맹목적 흠모와 동경이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저들이 휘젓는 세상, 2023년 3월 대한민국 이 땅에서는, 역사에서 영원히 유배당해 마땅할 2차원적인 좀비들이 설치는 풍경이 일상화 되고 있다. 저들의 ‘하얀 가면’은 언제쯤 벗어지려나? 우리도 늦었지만 ‘한국인 정체성 찾기 운동’ 이라도 벌여야 하나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저자프란츠 파농출판인간사랑발매2013.08.20.

 

 

 

 

 

 

 

*네그리튀드([프] ngritude): ‘흑인성(黑人性)’으로, 흑인 스스로 흑인을 존엄하게 바라보는 복권 운동이다. 1930년대 파리에서 흑인 유학생들이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흑인으로서의 주체적인 깨달음과 흑인문화 회복을 목표로 했던 문화운동이다. 이 운동의 대표자는 1960년대 세네갈의 대통령이 된 L.S. 상고르와 이 말을 만들었던 A. 세제르 등이다.

 

이들은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된 유럽의 모든 가치를 거부하고 아프리카의 전통적 사회에 뿌리를 둔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으며, 그리스적인 이성보다도 직관력과 독창적인 예술적 감성을 가진 흑인의 심성과 흑인적 가치가 문화의 혼혈을 통해 새로운 세계 문명의 효소가 되리라고 기대하였다.

이 운동은 프랑스 식민정책인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서 창설된 ‘프레장스 아프리켄’이라는 아프리카인 문화단체는 기관지를 통해 네그리튀드운동을 전개시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주체성 이데올로기의 중심 개념으로까지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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