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14분 43초'가 건네는 의미

2023. 2. 27. 11:48카테고리 없음

 

2023년 2월 26일 챌린지마라톤. 한강변. 마라톤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4시간 30분을 목표로 삼았다. 컨디션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마라톤 출발지점에 서면 내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까 라는 두려움이 든다.

5분 40초를 뛰는 팀과 함께 뛴 게 잘못이었다. 그동안 운동을 안 해서 마라톤 제 일 계명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마라톤 제 일 계명은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말아라다.

12킬로미터까지 뛰었을 적에 오버페이스임을 몸이 알았다. 이미 늦었다. 이제부터 뛰어야 되느냐,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느냐가 문제였다.

 

답은 일단 반환점까지 가보자였다.12킬로미터부터 뛰다 걷다는 마라톤 인생에 처음이다. 12킬로부터 걷는다는 것은 남은 30킬로를 걸어야 된다는 소린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일단 반환점을 돌고 보자고 생각했다. 드디어 21킬로미터 하프를 지났다. 여기서 그만 되돌아서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32킬로미터 반환점까지만 더 가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24킬로, 27 킬로, 28 킬로, 29 킬로미터를 넘었다.

난 한 번도 마라톤을 하며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다. 하프든 풀코스든 울트라든,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마라톤은 참 정직한 운동이다. 한 발짝 가면 한 발짝 목표지점이 줄어든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한 발짝이든 열 발짝이든 오히려 뒤로 뒤로 물러설 수도 있다. 우습게도 이 냉정하고 잔인한 '세상'이란 놈이 나를 뒤에서 밀어준다.

드디어 32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이제 10킬로미터는 정말 기어서도 간다.

인천대공원 한 바퀴라고 생각하고 뛰었다. 걸었다. 뛰었다. 걸었다하니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세상살이가 어렵지만 마라톤 역시 나에게는 참 힘든 운동임을 절감한다.

그래도 풀코스를 이렇게 힘들게 뛰어보기는 마라톤하고 처음이다. 물론 연습을 안해 그렇기도 하지만 내 몸이 그만큼 쇠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4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이제 1킬로만 더 가면 42.195킬로미터가 완료된다. 고맙게도 마라톤 동료들이 마중을 나왔다. 드디어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쌀쌀한 날씨에 기다려 준 동호회원들이 반갑다. 고마운 일이다.

내 마라톤 13년 경력 중에 뒤에서 최고 기록을 세윘다. 5시간 14분 43초. 앞으로 당분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완주하여 내 마라톤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은 내 몸에 고마움을 표한다.

하늘은 참 파랗다.

나와 함께 피니시라인을 함께 통과한 이 분. 내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던 분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 마라톤계에 전설인 박용각(67세) 이라는 분이다. 참 대단한 분이다. 신문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최초로 풀코스 100회 완주자다. 당시 나이 47세. 80세까지 풀코스 1000회를 뛰겠다고 하신다. 울트라마라톤도 수 없이 뛰었고 1500킬로까지 뛰었으며 1등한 적도 여러번이다.

"먼저 들어가세요."하니까 "함께 들어갑시다." 하며 내 손을 따뜻하게 잡는다.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면서 물었다.

"마라톤을 통해서 얻은 게 무엇입니까?"

맑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건강이지요. 기록은 중요치 않아요. 해냈다는 기쁨이지요."

돌아서면서 나에게 빵을 하나 더 주신다.

"하도 많이 뛰어서 내가 이 마라톤 사람들 다 잘 알아요. 하나 더 얻었으니 가시다가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