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담의 공부법>- ‘종종조법(從從鳥法)’

2022. 12. 24. 13:06카테고리 없음

<서화담의 공부법>- ‘종종조법(從從鳥法)’

화담은 늘 말하기를, “나는 스승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나의 말을 따르면 나와 같은 수고는 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것이 자득지학(自得之學,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공부)이다. 이 자득지학이 바로 화담 서경덕의 단계 공부법인 ‘종종조법(從從鳥法)’이다. ‘종종조’는 종달새니 풀어 말하면 ‘종달새 공부법’이다. 

 

화담은 딱히 스승이 없었다. 혼자 공부하였기에 ‘격물(格物,자득하려 사물의 이치를 따져 밝힘)’을 하기 위해 ‘궁리(窮理,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사색함)’하였다. 그 방법이 ‘종종조법’이다. 예를 들어 하늘의 이치를 격물하려면 ‘하늘 천(天) 자’를 벽에 써놓고서 몇 날 며칠이고 묵묵히 생각하며 문헌들을 뒤져 ‘하늘 천(天) 자’ 주변을 톺아보는(샅샅이 훑어가며 살핌) 공부법이다. 검증하고 확인하는 사이에 종달새가 오늘은 한 치, 내일은 두 치를 날 듯, ‘하늘 천(天) 자’에 대한 자신만의 가설이 세워지고 끝내 자득에 도달한다. 이렇게 ‘하늘 천(天) 자’의 이치를 깨달은 뒤에야 다른 글자를 써놓고 격물하는 단계 공부법이 바로 ‘종종조법’이다. 

‘종종조법’은 화담이 어릴 때 나물을 캐다가 종달새가 점차 높이 나는 것을 보고 공부의 이치를 깨우쳤다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 기록은 《남계집(南溪集)》 권57 〈잡저(雜著) 기사(記事)〉에 보인다. 그 내용은 이렇다.  

 

화담은 집안이 매우 빈한하여 어렸을 적에 봄이 되면 부모가 밭에서 나물을 캐오게 하였는데, 매일 집에 늦게 돌아오는데도 나물은 바구니를 채우지 못했다. 부모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화담이 대답하였다.

“나물을 캐려 할 때 들에 새[從從鳥]가 있어 날아다녔습니다. 오늘은 땅에서 한 치를 날다가 내일은 두 치를 날고 또 그다음 날에는 세 치 높이를 날아서 점차로 높이 날았습니다. 저는 이 새가 나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이치를 생각해 보았으나 왜 그런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늘 지체하여 집에 늦게 돌아오면서도 나물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못했습니다.” 

 

화담이 본 새가 바로 ‘종달새’이다. 화담이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은 여기서 출발하였다. 결국 ‘종종조법’은 사물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관찰→궁리(사색)→자득(격물)으로 이어진다. 

 

대학자 이이(李珥)도 화담의 이러한 공부법을 인정하였다. 화담을 의정부 우의정에 증직하느냐 마느냐는 논의에서다. 이이는 선조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자 ‘세상의 이른바 학자라는 자들은 성현의 말만을 모방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얻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 “경덕은 즉 깊이 사색하고 자기만의 학문으로 나아가 스스로 터득한 묘리가 많으므로 언어나 문자만을 힘쓰는 학문은 아닙니다(敬德 則深思獨詣 多自得之妙 言語文字之學)”라 화담의 독특한 학문 세계를 인정한다. 이이가 인정하는 화담의 학문은 ‘깊이 사색하여 자기만의 학문으로 나아가 스스로 터득한 묘리’이다. 선조는 이 말에 따라서 화담을 증직하였다.

 

이제 화담이 ‘종종조법’으로 자득한 시 한 편을 본다.

 

有物來來不盡來(유물래래부진래) 

사물은 오고 또 옴에 그침이 없으니 

來纔盡處又從來(래재진처우종래)

옴이 겨우 그친 곳에서 또 따라서 오고

來來本自來無始(래래본자래무시)

오고 또 옴은 본래 스스로 옴에 시작이 없으니 

爲問君初何所來(위문군초하소래)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서 왔는가?

 

뫼비우스띠 처럼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다. 올봄에 핀 꽃이 졌지만 내년에 또 새로운 꽃이 피고 진다. 그러니 내가 온 곳을 모르는데 간 곳을 어찌 알겠는가? 시작도 끝도 없는 생성의 세계를 관조한 시이다. 이런 관조를 얻었기에 자득(自得)하여 스스로 즐기며 세상의 시비(是非)‧득실(得失)‧영욕(榮辱)으로부터 자유로웠으리라. 이렇게 보면 '송도삼절'을 만들어 낸 황진이와 로맨스 아닌 로맨스도 '목숨 걸듯한 인연(因緣:사랑)도 끝내는 허무한 이연(離緣)임을 알아서 아닐까'로 해석해 본다.이를테면 '종종조법 사랑'이라고나 할까?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花潭)‧복재(復齋)이다. 개성 오관산(五冠山) 영통(靈通) 계곡 입구에 있는 화담(花潭)에 서재를 세우고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이지함(李之菡,1517~1578), 서예로 유명한 양사언(楊士彦,1517~1584), 주역을 연구하고 『동국지리지』를 지은 한백겸(韓百謙, 1552~1615), 영의정에 올라 약 15년간 재직한 박순(朴淳,1523~1589), 허엽 등 한 나라의 내로라하는 후학들을 길러냈기에 화담선생이라 불린다. 그는 성리학자로서 기철학(氣哲學)을 주장하여 이황과 논쟁을 하는 한편, 노장 사상과 불교에 대한 이해 또한 깊었다. 그래서인지 ‘전우치 설화’를 비롯한 민담에 도사로 자주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