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8) 대책문(對策文), 시대의 물음에 답한다

2022. 9. 19. 18:35카테고리 없음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8) 대책문(對策文), 시대의 물음에 답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2.5%만이, 대북·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선 5.0%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꽤 높은 수치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73.7%), 대북·외교안보정책(75.0%)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평가가 극과 극이다.” <신뢰도 가장 낮은 현직 대통령 윤석열>이란 제하의 '시사IN'(2022.9.13.) 기사이다.

기사의 “평가가 극과 극이다”라는 말은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이요, 불가살이들이 설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대화가 제대로 되고 불가살이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이 이 시대의 물음이다. 그 답을 실학자들에게서 찾아본다.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1762~1849) 선생은 불가살이를 소인배라 하였다. 안타깝게도 소인을 대인으로 만들 방법을 필자는 모른다. 국민의 의식도 바로 성장시킬 방법은 모른다.(특히 여의도를 점령한 저 소인 무리들은 더욱 모르겠다.) 이 땅의 불가사리를 영구히 없애는 처방전은 더더욱 모른다.

다만 이런 대책문을 쓴다. “나에게 지렛대와 지탱할 장소만 준다면, 나는 지구도 움직일 수 있다.” 지렛대 원리를 발견한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말이다. 불가살이 퇴치에 이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어떨까. 지렛대 원리를 잘 이용하면 작은 힘으로도 아주 무거운 물체를 쉽게 움직이듯이. 지레는 3요소로 작용한다. 지레를 받쳐 주는 지점인 받침점, 지레에 힘을 주는 지점인 힘점, 지레가 물체에 힘을 작용하는 지점인 작용점이 그것이다. 받침점과 힘점 사이가 적정한 거리일 때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린다. 이를 '받침점: 염치, 힘점: 대화, 작용점: 불가살이 퇴치'로 설정하고 받침점은 취석실(醉石室) 우하영(禹夏永, 1741~1812) 선생의 ≪천일록≫에서, 힘점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의 <마장전>에 찾아본다.

받침점은 염치(廉恥,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우하영 선생은 “염치는 사유의 하나이다. 사유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꼴이 못 되고 사람도 사람 꼴이 되지 못한다.…어린아이가 귀한 보물을 가슴에 품고 시장 네거리에 앉았어도 제 아무리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들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침을 흘릴 뿐 감히 빼앗지 못하는 이유는 염치가 있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천일록≫ 제5책 '「염방」(廉防, 염치를 잃지 않도록 방지함)'에 보이는 글이다. 염치란 손끝의 가시와 같다. 상대방의 눈치를 마음으로 볼 때만 생겨난다.

'사유'는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벼릿줄로 예(禮, 예절)·의(義, 법도)·염(廉, 염치)·치(恥, 부끄러움)다. 선생은 이 중 염치를 가장 먼저 꼽고는 이를 잃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는 나라의 중력이요, 우리네 삶의 산소와 같다. ≪관자≫<목민편>에서 관중은 이 사유 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어지고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멸망한다(一維絶則傾 二維絶則危 三維絶則覆 四維絶則滅).”고 한 이유도 그러해서다.

이제 힘점인 대화(對話,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다. 받침점을 든든하게 놓고 힘점을 가하면 작용점에 변화가 반드시 온다. 인간(人間,틈), 공간(空間,하늘), 시간(時間,땅)을 '삼간(三間)'이라 한다. 여기서 '간(間)'은 사이, 즉 '틈'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이 있고 이 틈 사이에 사람이 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다. 이 틈은 지나치게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틈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힘점인 대화이다. 대화를 하려면 받침점과 힘점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작용점에 영향을 미치듯, 서로 간에 틈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연암은 이를 '틈의 미학'이라 하였다. 선생은 <마장전(馬傳,말 거간꾼 이야기)>에서 “사람이 사귀는 데에는 반드시 틈이 있게 마련(至於交也 介然有閒)”이라며, “아첨은 그 틈을 파고들어가 영합하는 것이요, 고자질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하는 이간질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사귀는 이는 먼저 그 틈을 잘 이용하고 사람을 잘 사귈 줄 모르는 이는 틈을 이용할 줄 모른다.”고 하였다. 대화는 누가 맞고 틀리다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는 매우 유용한 처방전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연못에 힘센 붕어와 약한 붕어가 살았다. 먹이 욕심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우다 결국 약한 붕어가 죽고 말았다. 힘센 붕어는 좋아했지만 얼마 후 죽은 약한 물고기 살이 썩고 물이 더러워지자 힘센 붕어도 죽어버렸다. 이야기는 알력과 갈등을 고조하는 대적이 아닌 대화, 즉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모두 산다는 공생의 교훈을 건넨다. 대화는 어려운 것도 따로 학습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대화의 기술은 부끄러움을 알고 상대의 말을 두 귀로 듣고 한 입으로 말하면 된다. 이러할 때 대화는 여론이 되고 공론이 된다.

작금의 우리 사회, 특히 권세와 물질로 몸을 겹겹이 휘감은 자칭 대한민국 지도층이라는 저들에게 염치와 상생의 대화가 있는 지 묻고 싶다. 우리 백성들만이라도 염치로 받치고 대화에 힘을 준다면 반드시 그 작용으로 이 땅에서 불가살이들[소인배]이 퇴치될 것이다.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려본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