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질투는 왜 강할까?

2022. 8. 12. 10:34카테고리 없음

여자의 질투는 왜 강할까?

 

9월쯤 출간될 가칭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예서출판사)을 마무리한다. 여자의 질투 이야기가 나오기에 쓴 글이다. 

 

간 선생 왈(曰): 이 야담에는 두 가지의 지혜가 보인다. 아들의 일을 권 진사에게 슬며시 물어 권 진사의 행동에 제약을 준 친구의 지혜가 하나요, 시앗을 보게 되는 며느리 투기를 막아 집안을 화락하게 한 권 진사 지혜가 또 하나이다. 문제는 이 두 지혜가 모두 며느리에게는 영 지혜가 아닌 성싶다는 데 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여인들의 투기는 무서울 정도로 냉혹하다.

 

‘인체人彘: 사람돼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돼지 모양으로 만드는 혹독한 형벌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고, 두 눈을 칼로 후벼서 파내 장님 만들고, 구리를 녹여 귀속에 집어넣어 귀머거리 만들고, 혀를 잘라 벙어리를 만드는 극형이다. 그러고 나서 몸뚱이를 뒷간에 버려둔다. 바로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가 척부인戚夫人에게 내린 벌이다. 유방이 죽은 뒤 여태후는 남편의 총애를 받은 척부인을 저렇게 뒷간에 넣어 죽였다. 시앗에 대한 무서운 증오이다.

허나, 두 사람이 정녕 인연이라면…. 그래, 인디언 주례사는 이렇단다. “사랑할 때까지만 함께 행복하니 잘 살아라.”

 

우리 고소설 <흥부전>에도 시앗이 나온다. <흥부전>에서 흥부는 박을 타서 온갖 금은보화를 다 얻는다. 그런데 시앗을 얻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그 대목은 이러하다. 박을 타 놓으니 그 속에서 연인이 나와서는 나부시 엎드려, “저는 월궁의 선녀입니다”라 한다. 흥부가 그래 왜 내 집에 왔냐고 하자, 선녀는 “강남국 제비왕이 나더러 그대 부실이 되어라 하시기로 왔나이다”라 한다. 물론 흥부처의 투기도 없지 않으나 흥부는 이 여인을 첩으로 맞아 행복하니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첩이 놀부 아내가 보기에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박을 타며 “다른 보화는 많이 나오되 흥부 아주버니같이 첩만은 나오지 마소서”한다. 흥부에게는 행복이지만 흥부 처에게는 행복이 아닌가 보다. 이 선녀가 이본에 따라서는 아래와 같이 양귀비로 나오기도 한다.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흥부에게 절을 하니, 흥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요.”

“비라 하니 무슨 비요.”

“양귀비요.”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돼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꼬.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사랑에 대해 몇 자 첨언한다. 남자로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은 등골이 서늘하다. 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질투가 강할까? 『유혹의 심리학』(퍼트릭 르무안 지음, 이세진 옮김, 북폴리오, 2005, 28쪽)을 보다가 그 답을 찾았다.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

귀결은 여자의 사랑이 남자보다 진정이란 의미이다. 그러니 남성들이여! 어떤 여인의 질투가 혹 심하거든 이 세상에서 그대를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