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8. 11:33ㆍ카테고리 없음
<하일대주(夏日對酒)>를 읽으며
대단한 폭염이다. 내 글쓰기도 이 폭염에 한풀 꺾여 맥을 못 춘다. 블로그 공간도 두 달째 텅 비어 있다. 세상은 강고하고 시간은 빠른데 삶은 비루하고 생각은 많다. ‘비워라. 내려놓으라. 버려라.’ 수 없이 욕망과 근심과 잡념과 이별을 고하려하지만 욕망은 근심을 낳고 또 잡념을 무시로 잉태하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러니 이 아침 다산 선생의 <여름에 술을 대하다(夏日對酒)>라는 시를 읽는다. 선생이 갑자년(1804) 여름 강진에 있으면서 쓴 시의 일부다. 선생이 보는 세상은 저러하였다.
산천정기가 인재를 만들어낼 때 山嶽鍾英華
본래 씨족을 가려 만들 리 없고 本不揀氏族
한 줄기 정기가 반드시 未必一道氣
귀족의 뱃속에만 있으란 법 없지 常抵崔盧腹
솥이 엎어져야 물건을 담고 寶鼎貴顚趾
난초도 깊은 골짝에서 난다네 芳蘭生幽谷
송의 명신 한기(韓琦)는 비첩 소생이고 魏公起叱嗟
송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은 개가녀 아들 希文河葛育
명의 대학자 구준(丘濬)은 변방 출신이지만 仲深出瓊海
재질은 모두 세상에 뛰어났거늘 才猷拔流俗
어찌하여 벼슬길이 이리도 좁아 如何賢路隘
수많은 사람들 뜻을 펴지 못할까 萬夫受局促
오직 귀족들만이 활개를 펼치니 唯收第一骨
나머지 사람들은 종놈과 같구나 餘骨同隷僕
선생은 이 시 마무리를 “곰곰 생각하면 속만 터져(深念焦肺肝) 또 술이나 한 잔 마시련다(且飮杯中醁)”로 맺는다. 아침부터 선생을 따라하자니 내 기개가 선생만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열화가 오른다. ‘비라도 주룩주룩 내려야 우중 산보라도 하련만-’ 때늦은 잠꼬대 같은 소리만 주억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