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 그리고 기생(妓生)(5) 일지홍(一枝紅) 편

2022. 4. 28. 11:15카테고리 없음

5.

일지홍(一枝紅)1)은 평안남도 성천(成川) 기생으로 시를 잘 지었다. 태천(泰川) 홍명한(洪鳴漢)2)에게 준 <태천 홍명한에게 올리는 시(上泰川 洪衙內詩)>가 있다.

강선루3) 아래에 말을 세우고 馬駐仙樓下

"언제나 오세요" 은근히 물어라 慇懃問後期

이별 자리에 술도 다하였으니 離筵樽酒盡

꽃은 떨어져 새만 슬피 우네 花落鳥啼時

일지홍이 이 시를 지을 때에 잠시 생각하고는 붓을 당겨 지어냈다한다.

훗날 어사 심염조(沈念祖)4)가 성천에 지나가다가 이 시를 보고 일지홍에게 시 한 수를 주었다.

고당부5) 같은 신기한 경지요 성당의 시체인데 高唐神境盛唐詩

선관의 명화 가운데 무르녹은 한 가지일세 仙舘名花艶一枝

조운6)에서 한림학사 만났다 이르지 마소 莫道朝雲逢內翰

노부는 재주 없어 감당하기 어렵다오 老夫才薄不堪期

이 시에 대해 일지홍이 또한 시로 화답하였다.

서울 소식을 누구에게 물어 볼까요 洛陽消食憑誰問

밝은 달 발에 비칠 때 둘이 서로 생각하리 明月當簾兩地思

그리고 또 윤감사(尹監司)에게 올리는 시는 이렇다.

작년 서리 내려 국화꽃 필 때쯤이지요 前年降節菊花時

어찌나 제 몸이 영예롭고 행복했는지요 何幸榮名耀一枝

듣자오니 봄 순행길에 금방 북쪽으로 지나쳤다니 聞道春巡纔北過

어째서 이곳에 오신다는 약속을 어기셨나요. 胡然仙駕此愆期

또 일찍이 그 이름으로 제목을 삼아 절구를 지었다.

혹 남들이 꺾기 쉽다고 여길까 봐서 或恐人易折

향기는 감춰 두어 짐짓 피지를 않지요 藏香故不發

또 김진사(金進士)가 지은 시의 운자를 딴 시가 있다.

신선 배 막호(莫湖)7)에 두둥실 원앙이 놀라 仙舟莫湖驚鴛鴦

가고 오는 긴 물길만이 합쳐지네요 任去任來肥水長

일지홍 이름 얻음이 부질없어 되려 부끄럽기만 浪得花名還自愧

강마을 봄이 다하니 한스럽게 향기조차 없어라 江城春盡恨無香

1) 성천 기생의 일지홍은 18세기 중엽, 기생으로 당대 명성이 널리 알려 졌다.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관서악부(關西樂府)』에는 일지홍에 관한 두 편의 시가 보이니, 그 중 한 편은 아래와 같다. 이 시는 신광수가 일찍이 서울을 떠나 와 평양을 유람하다 지은 시이다. ‘삼백 리’는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요, ‘교서랑(校書郞)’은 본래 책이나 문서에서 글자나 내용을 살피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벼슬이름이다. 당(唐)의 기녀 설도(薛濤)가 교서의 일을 맡아본 데서 온 말로 ‘기녀(妓女)의 이칭’이 되었다.

成都小妓一枝紅 성도(成都:성천)의 어린 기생 일지홍은

錦繡心肝解語工 마음씨는 비단결,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飛馬馱來三百里 나는 말 타고서 삼백 리를 달려오니

校書郞在綺羅中 교서랑은 곱고 고운 비단 속에 있구나

2) 홍명한(洪鳴漢,1736~1819)은 본관은 풍산(豊山), 자(字) 공서(公舒). 명한은 초명으로 영조(英祖) 47년 (신묘, 1771년), 정시(庭試) 병과5(丙科5)에 급제하여 형조․예조판서, 지돈녕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3) 강선루(降仙樓)는 성천(成川)에 있는 누각.

4) 심염조 (沈念祖,1734∼1783)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백수(伯修), 호는 함재(涵齋). 1776년(영조 5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관서암행어사, 이듬해에는 강화어사, 1780년 함종부사·규장각직제학·이조참의를 거쳐, 1782년 홍문관부제학으로 감인당상(監印堂上)에 임명되었으나, 대사간의 탄핵을 받아 홍주(洪州 : 현재의 충청남도 홍천)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783년 황해도관찰사로 있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5) 『청장관전서』 제35권 , 청비록 4, ‘일지홍(一枝紅)’에는 “어사(御史) 심염조(沈念祖)가 순찰하다가 성천에 이르러, 일지홍의 시를 보고 나서 종담(鍾譚)의 시를 읽도록 권하고 돌아갈 적에 지어 준 시”라고 하였다. 종담(鍾譚)은 시로 명성이 높았던 명나라 종성(鍾惺)과 담원춘(譚元春)을 말한다. 또 “성천에 십이무봉(十二巫峯) 과 강선루(降仙樓)가 있었으므로 고당(高唐)과 선관(仙館)과 조운 등의 일을 인용하였다.”고 하였다.

6)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서’에 "초 양왕(楚襄王)이 운몽대(雲夢臺)에서 놀다가 고당(高唐)의 묘(廟)에 운기(雲氣)의 변화가 무궁함을 바라보고 송옥(宋玉)에게 '저것이 무슨 기운이냐?'고 묻자 '이른바 조운(朝雲)입니다. 옛날 선왕(先王)이 고당에 유람왔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저는 무산(巫山)에 있는 계집으로, 침석(枕席)을 받들기 원합니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정을 나누고 떠날 적에 「저는 무산 남쪽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늘 양대(陽臺) 아래 있습니다.」 했습니다.'고 하였다." 하였다.

7) 중국 태호에 있는 다섯 개의 호수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