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 책 따로 나 따로)’ 허연 백지 위의 그저 파리 대가리 만한 점일 뿐

2021. 12. 11. 12:25카테고리 없음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 책 따로 나 따로)’

허연 백지 위의 그저 파리 대가리 만한 점일 뿐

“하루 아홉 참(站)식 열 참(站)식 녜거늘”

“하루에 아홉 참(站)씩 열 참(站)씩 가거늘”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간행된 《박통사언해 朴通事諺解》라는 책에 보인다.

‘참’이란, 여행하는 사람이 쉬던 곳을 이르는 말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한다. ‘한참 기다렸다.’처럼 우리가 자주 쓰는 이 ‘한참’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한참’은 두 역참(驛站)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던 데서 비롯한 말로,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즉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경우라 하겠다.

그리고 새참(곁두리)이니, 밤참이니, 할 때의 '참'도 이 참(站)에 잇댄다. 여기서 ‘참’은 일을 하다가 잠시 쉬며 먹는 음식이다. 우리 속담에 “고추 밭을 매도 참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고추 밭 매기처럼 헐한 일이라도 ‘참’을 준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사람을 부리면 보수로 끼니는 때워 줘야 한다는 속담이다.

이외에도 ‘참’은 ‘일을 하다가 쉬는 일정한 사이’나 “집에 가려던 참이다”처럼 무엇을 하는 경우나 때를 지칭하는 따위, 그 쓰임새가 참, 폭넓다.

《예기禮記》의 <학기禮記>에 이런 말이 있다.

“수유가효 불식 부지기미야(雖有嘉肴 弗食 不知其旨也).”

‘비록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배움을 음식에 빗댄 가르침이다. 요즈음 책을 마음으로 보지 않고 제 지식만 챙기려는 자들을 흔히 본다. 지식 자랑이나 하려는 독서가 어디 책을 보는 것인가. 마음으로 글을 보지 않는다면 글자들은 허연 백지 위의 그저 파리 대가리 만한 점일 뿐이다.

천천히 ‘참(站)’에서 쉬며 ‘새참’ 먹듯, 마음으로 글을 새기며 읽어야 제 삶과 연결된다. 그렇지 않다면 제 아무리 책을 읽어봤자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 책 따로 나 따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