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2021. 12. 8. 11:59카테고리 없음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참판 김니의 ‘삼부(三負) 오속(五束)의 차’가 나온다. 김니(金柅,1540∼1621)라는 이의 호는 유당(柳塘)인데 그 재주가 놀랍다. 이 양반이 쌍성(함경도 영흥)의 수령을 지낼 때 하루는 할 일 없어 관아의 문서, 장부 등을 한번 훑어보았단다. 그러고는 후일 벼슬이 갈렸고 쌍성고을 관아가 불에 탔단다. 그때 유당이 전일 외운 것을 기억해내니 그 차이가 겨우 3부와 5속이란다. ‘부’와 ‘속’은 땅의 면적 단위이다. 한 고을의 그 많은 전지를 다 외웠고 후일 기억해 내었다는 사실에 기함할 노릇이다.

조선조 문과 방목을 보면,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라는 분도 있다. 이 분은 1852년에 태어나 고종3년(1866년) 별시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입격하였다. 이때 나이 14세, 단연 조선조 문과 합격자 15,151명 중에서 최연소 합격의 기록이다. 왕명 출납, 제반 행정사무 따위를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보면, 이건창은 고종 5년(1868)에 승정원의 일기를 기록, 정리하는 가주서(假注書)란 직책을 맡으니 나이 겨우 16세였다.

또 정태화(鄭太和,1602∼1673)라는 분은 어떤가.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6조 참의, 참판, 판서를 모두 역임하고 영의정을 6번씩이나 역임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유일한 관운(官運) 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형제가 모두 6조 판서를 지냈으니, 그 집안의 재주와 관운에 소름이 돋고 말문이 막힐 뿐이다.

지금도 신문을 펼치면 지면마다 천재가 나온다. 정치 천재, 어학 천재, 판소리 천재, 천재 시인, 천재 소설가, 천재 가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천재의 행렬이다.

지금도 저러한 재주 있는 이들을 만날 때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면서 더 저러한 천재들이 부러웠다. 그럴 때면 저들과 통성명도 못 하는 내가 몹시도 안쓰러웠다. 우리네 속담에 사람은 누구나 재주 하나는 가지고 있어 그것으로 먹고살아 가게 마련이라는 ‘타고난 재주 사람마다 하나씩 있다’거나 하다못해 ‘굼벵이도 꾸부리는〔떨어지는〕 재주’가 있다 하는데, 내 깜냥으론 저 두 속담이 늘 야속하기만 하던 때였다.

한 번은 우연한 기회에 하늘에서 내리는 그 많은 눈의 결정은 ‘단 한 개도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유는 눈 결정이 만들어질 때의 기온과 포화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눈도 저러하거늘 하다못해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내 삶의 여건과 저들의 삶이 다르거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둘레둘레 찾아보니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란 우리네 속담이 있었다. 새의 힘이 소보다 약할지라도 소의 힘과 마찬가지로 역시 힘은 힘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크나 작으나 각기 제 능력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저마다 제 좋은 점이 있다는 ‘각기소장(各其所長)’이란 말 또한 그렇다.

그중,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남 배 속의 글을 옮겨 넣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었다. 재능이나 지식은 다른 사람의 것을 옮겨 놓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 뒤론 ‘그저 내가 가진 깜냥만큼 열심히 책이나 보자꾸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 내 저 ‘유당의 재주’가 없지만, 오늘도 당나라 선승인 임제의현(臨濟義玄,?~867)이란 분의 말을 자위 삼아 읊는 이유다. 내가 나에게 '세상 애써 살아가보자'하고 다독거리는 주문이렷다.

질질 땅에 끌려 다니지 말라! 不隨萎萎地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이 모두 참이 되느니라! 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제록(臨濟錄)』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