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도>

2021. 10. 27. 16:08카테고리 없음

<화씨 451도>

 

화씨 451도는, 섭씨 233도이다. 책(종이)을 불태울 때 온도이다. 레이 브래드베리가 1953년에 쓴 과학 소설로 《화씨 451》도 있다. 이 소설은 책이 금지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이 인간에게 주는 효용성을 ‘얼마나 쓸데없는지, 생각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로 폄하해버리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한마디로 책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내 책도 서점의 한 편에서 긴, 아니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을 꿋꿋이 견뎌내야 할 것이란 것을 의심치 않는다. 책 안 읽기로 당당 oecd 국가 1위를 자랑하는 우리의 독서 문화이다. 이 현실이 내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출간하는 책은 인간 처세술과는 아예 거리가 멀찍하다. 내 책 속의 글들은 하나같이 물질이나 인간 처세술 앞에 ‘반(反)’이라는 부정 명사를 붙여서다.

 

책을 출간할 때(나는 출간된 책을 받으면 가장 먼저 수정본을 만든다. 책꽂이에 꽂힌 수정본을 세어보니 그럭저럭 40권하고도 몇 권 더 셈한다)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여러 양상을 보인다.

 

우선 책을 사는 사람(1%): 안 사는 사람(99%)으로 나눌 수 있다.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대개 아무 말이 없거나 책을 읽은 소감을 진지하게 말해준다. 더러는 책만 구입하여 장식용이나 과시용으로 책장에 안치해두고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안 사는 사람을 보면 그 유형이 자못 흥미롭다. 우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방관형(40%쯤)이다. 가장 숫자가 많다. 이 유형은 내가 책을 내거나 말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음이 가장 재미있는 충고형(30%쯤)이다. 베스트셀러를 쓰란다. 그러면 잘 팔릴 거라며 이러저러하게 충고를 한다. 이러한 충고형을 만나면 나는 입을 꾹 닫는 수밖에 없다. 그런 글을 쓸 수 없어서다.

 

다음이 입인사형(15%쯤)이다. 이 유형은 반드시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러며 꼭 사서 보겠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절대, 결코, 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가장 기분이 묘한 형은 경시형(10%쯤)이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내 책이 형편없다는 것을 미리 안다. 그이 눈은 결코 내 눈과 마주치지 않는다. 말도 제 말만 한다. 책을 출간했건 말건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나머지 분들은 기타형(4%쯤)이다. 특이한 기타형에는 '콕 집어 이런 것을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무례한 시선으로 '책 한 권 달라'기도 한다. 아예 '나는 책을 안 읽는다'고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화씨 451》에서 주인공 가이 몬태그(Guy Montag)는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放火手, fireman)이다. 책을 출간할 즈음이면 나는 악몽을 꾼다. 내 책을 잉태시킨 서재 휴휴헌(休休軒)에 불을 지르는 꿈이다. 책이 타는 그 불길 속에서도 용케 나는 내가 쓴 책을 찾아낸다.

 

그 불길에 어룽지는 내 얼굴은 분명 방화수(放火手)가 아닌 방화범(放火犯)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