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나'와 '나 아닌 나'

2021. 10. 25. 11:12카테고리 없음

'나인 나'와 '나 아닌 나'

 

문제를 내겠습니다.

 

두 명의 사건 용의자가 체포되어 서로 다른 취조실에 있다. 죄수들은 자백 여부에 따라 다음의 선택이 가능하다.

1) 둘 중 하나가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즉시 풀어주고 나머지 한 명이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2) 둘 모두 서로를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둘 모두 5년을 복역한다.

3) 둘 모두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둘 모두 6개월을 복역한다.

 

얼간이 죄수라도 답은 3)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각각 6개월만 복역하면 됩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두 죄수는 서로를 믿지 못해 죄를 자백하고 맙니다. 그들은 2)처럼, 서로를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고는 5년씩 복역합니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罪囚- prisoner's dilemma)입니다.

 

며칠 동안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장 많이 들은 말 셋만 추리자면, '금권 만능’, ‘부패한 정치', '교육 지옥'입니다. 무한 진화하는 이 말들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는 꼭 이런 말이 따라붙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사람들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나 역시도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라는 장벽에 부딪칠 때면 어김없이 하는 소립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어쩔 수 없다'는 부정사 류의 통사 구조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얕은 꾀입니다.

 

'나인 나'와 '나 아닌 나 중, '나 아닌 나가 '나인 나를 번번이 이깁니다. 나는 피조물이 아닌 데도 말입니다. 피조물(造物)'의 사전적 정의는 '조물주(造物主)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만물'을 이릅니다. 인간이기에 이 사전적인 정의까지야 부정할 수 없다지만, 내가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의 피조물이 아니란 점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사는 자연인으로서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나는 나로서 가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가 아닌, '난 너와 동일해야에는 내가 없습니다. 내가 없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현실이 제아무리 두렵더라도 대항할 것이 있습니다. 도덕이니, 예의니, 진실, 신의, 정의 따위는 그래 내가 소중히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비록 저 외로운 낱말들을 듣고, 이제는 더 이상 스무 살 시절의 새파란 혈기에 달뜨던 마음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나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문화와 관습이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닐진대, 내가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의 지배'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