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7. 16:16ㆍ카테고리 없음
“교수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강평을 본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2020년 2학기 <글쓰기와 토론>은 학교 전체에서 하위 5%이다. <2020-2학기 강의평가 모니터링 결과 송부 및 개선 방법 회신 요청>을 받은 날부터 이 글을 쓰는 오늘이 꼭 16일째이다.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있다. 2020년 1학기에 비해 평점이 10점 이상 낮아졌다. 코로나 19로 언택트 줌 강의를 하였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글쓰기 수업 아닌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심을 했고 지금도 고심한다.
세상이 차고 무섭다는 것은 이미 안다. 인문학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존재가치가 없다. 내 서재의 내(‘저’라는 지시대명사를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들은 더 이상 물질로서 교환가치를 잃었다. 내 글쓰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내 글쓰기가 이 사회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함을 절감한다.
그래서인지 학생을 가르친다는 사실 하나가 세상을 살아가는 희망이요, 위안이었다. 교실에서만은 따뜻한 정과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교실에서만은 나는 나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 생활 이제 30년이 넘어섰다. 난 결코 '등록금이 아까운 강의'나 '선생의 자질이 의심스럽도록 강의'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는데 이를 어찌하겠는가.
무엇이 나를 하위 5% 교수로 만들었을까? 생각을 거듭하지만 그 이유를 잡아내지 못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으로 강의실에 서는 것이 참으로 두렵다. 나는 이제 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써야 하는가? 이미 교환가치를 잃은 내(저) 책들처럼 나도 선생으로서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교수평가’를 보면서- “교수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학생의 글을 보면서.
아래는 오늘(2021년 2월 17일) 학교에 보낸 회신이다.
<2020-2학기 강의평가 모니터링 결과 송부 및 개선 방법 회신 요청>
프론티어학부: 간호윤
<55분반>
1. 학생의견: “수업과 관련 없는 내용 위주로 수업~”
개선방법: 교수는 글쓰기 대상은 모든 사물과 삶 일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일단 자신을 돌아보고 관찰, 독서, 사고, 글쓰기로 나아가야 자기만의 글이 나온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교재 외 내용을 강조하다 보니 이러한 의견이 나온 듯하다. 앞으로는 교재와 연계하여 교수의 글쓰기 생각을 전달해야겠다.
<54분반>
학생의견: “혁신을 강조했는데 수업자체가 혁신적이지 못하다.”
개선방법: 인정한다. 수업자체를 혁신하지는 못했다. 파워포인트 등 시청각 자료를 더욱 확보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 글쓰기를 고취시켜야겠다.
2. 학생의견: “블로그에만 있는 어려운 내용~”
개선방법: 코로나19로 언택트 줌 수업으로만 글쓰기를 진행한다. 이에 도움을 주려 교수의 블로그를 언급하였다. 교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은 모두 ‘글쓰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이다. 아마 학생에게는 이러한 것이 수업부담으로 느껴진 듯하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은 교수가 상용하는 어휘가 고전에서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하지 않고 선인들의 글쓰기는 풀어서 쉽게 설명해 주어야겠다.
3. 학생의견: “블로그 홍보가 너무 심하다.”
개선방법: ‘2. 학생의견’에 답했지만 줌 수업을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를 학생들에게 홍보하여 무엇을 얻겠는가. 교수의 삶은 학생을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이다. 당연히 교수의 블로그는 글로 채워져 있다. 교수가 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놓고 보라 한 것이 원인이다. 인생길이 그렇듯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 ‘이렇게 사물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다는 한 예를 보라’는 진정이 이런 의견으로 나온 듯하다. 삼가야겠다.
전반적인 내용을 보고: 교수는 전공이 국문학, 그것도 고전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고전을 연구하고 이를 글로 풀어낸다.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토론>은 여러 수업 중 한 과목인 교양필수이지만, 교수에게 <글쓰기와 토론>은 온전한 삶 그 자체이다. 교수의 수업에 대한 이해와 학생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다. 상충되는 접점의 간극이 지나치게 넓거나 좁아 나타난 학생들 의견이다. 이 문제에 대해 교수는 깊은 고민을 한다. <54분반>과 <55분반>은 모두 산업체 학생들이다. 더욱이 <글쓰기와 토론>은 1학년이 반드시 이수해야할 과목이다.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