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이 이미 그렇게 와 있었다.

2020. 9. 13. 13:08카테고리 없음

5월 첫 주, 봄이 완연한 일요일이었다. 아침 달리기를 하고 집에 와 씻고 나오다 물기에 겹질렸다. 넘어지며 이미 꽤 크게 다쳤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갔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인대 세 개가 끊어졌으니 당장 수술하자며 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안쓰럽게 보았다. 마라톤을 한 지 근 10여 년이다. 이렇게 마라톤과 ‘이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술하는 두려움보다 마라톤을 못 한다는 게 더 섭섭하였다.

 

병원을 옮기며 수술 안 하는 쪽을 택했다. 4 개월이 지났다. 9월 들어서 등산을 가볍게 두어 번 해보고 전 주에 처음으로 12킬로미터를 뛰었다. 처음 마라톤 입문했을 때와 똑같았다. 숨은 턱에 찼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라톤은 노력한 만큼만 결과가 나온다’는 당연함을 주억거려야만 했다. 발에 부기도 영 불편했다.

 

그렇게 오늘 세 번째 뛰었다. 두 번째보다 호흡은 편하였고 다리도 몸 상태도 조금은 여유롭다. 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도 참 오랜만에 들었다. 저기 대공원 문이 보일 무렵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꽤나 공활하고 푸른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포도에는 드문드문 낙엽이 점을 찍는다. 아! 가을이 이미 그렇게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