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과 이연(離緣), 그리고 이별(離別)에 대한 변증법-우리는 이별 중

2020. 6. 1. 09:51카테고리 없음

<인연(因緣)과 이연(離緣), 그리고 이별(離別)에 대한 변증법-우리는 이별 중>

 

아버지! 죄송합니다.” 울컥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 산소에 절을 올렸다. 밀레를 잡수시기 전 마지막 절이다. 1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다. 보모 자식으로 맺은 인연이 이연이 된지 벌써 그렇게 되었다. 오늘 밀레를 하고 화장을 잡수시니 내 마음이 울적하지만 새삼 눈물이 흐를 리 없다. 비로소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잊지 못했고 그렇게 이별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

 

나와 맺은 모든 인연은 이연이고 이연은 이별이다. 인연은 반드시 주체인 이쪽과 객체인 저쪽이 있다. 객체인 저쪽이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나와 맺은 인연은 모두 인연이 끊어지는 이연이 된다. 항구여일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 자식 간이건 부부이건 친구이건,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이건 꽃이건, 모든 인연은 반드시 연이 끊어지고 이별을 한다.

 

30년도 전, 할머니 산소를 찾아 담배 한 대 붙여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생각이 난다. 인연의 끈이 끊어졌으니 이별이라 하지만 난 할머니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이별은 아직 이별 중일뿐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며 가족과 헤어지는 것도 이별은 이별이다. 잠시이건 하루이건 이틀이건 우리는 무수한 이별을 한다. 이별한 뒤, 잠시 뒤에, 하루만에, 한 달만에, 수 십 년 만에도 만남도 모두 이별 중이었을 뿐 이별은 아니다. 혹 이승과 저승으로 인연이 끊어져 이연이 되었다하여도 이쪽이 이승에 있고 잊지 않는 한 이 역시 아직은 이별 중일뿐이다.

 

나와 맺은 인연은 셀 수조차 없다. 그 인연은 반드시 무수한 이연이 된다. 하지만 그 이연은 아직 이별 중일뿐이다. 이승을 떠나는 그날까지 내가 잊지 않는 한 이별은 없다. 이별 중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인연이 끊어져 이연이 되었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정말 슬퍼할 일은 아직 이연이 아닌 인연이지만 이별조차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별 중인 모든 인연들이여! 혹 저 이에게 내가, 나에게 저 이가, 이미 잊힌 사람은 아닐는지? 그래 이별조차 할 수 없는 인연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