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18일 Facebook 이야기

2012. 11. 18. 23:5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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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工)’자형의 인물

    염치없는 지식인들이 어제, 오늘 신문지상에 이름 석 자를 들이댄다. 아니, 행태로 보아서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영원무궁할 형세이다. 원하지 않는 진실이기에 매우 슬프다.
    어릴 적에 장마철이 되면 할머니는 긴 빗자루로 호박꽃을 때리곤 하셨다. 호박꽃은 이 매질에 떨어지고 잎은 찢기지만, 꽃에 있던 꽃가루가 빗자루에 묻어 다른 호박꽃잎에 옮겨 놓는다. 튼실한 열매는 여기서 맺히게 된다. 대추나무에 적당히 매질하는 이유도 같다. 지금이야 병원균이 밝혀져 대추나무 빗자루병이라고 부르고 치료방법 또한 현대적이지만, 예전에는 이를 매질하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이련마는 공부는 우리를 바로 잡아 튼실한 삶을 만들어주는 저 빗자루요, 도지개다. 도지개란, 틈이 나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 잡는 틀이란 의미이다. 그래 저렇듯 빗자루 공부, 도지개 공부를 착실히 한무릎공부해낸 이들이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의 옷을 갖추어 입고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허나, 공부가 출세의 수단으로 격하된 지금, 지식인들에게 ‘예의’, ‘윤리’, ‘염치’, ‘정의’는 심각한 토의 끝에 내리는 합의사항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저들의 성품으로 미루어 합의는 꽤 요원한 일일 것이니, 이미 지식인으로서 사망선고는 내린 셈 아닌가. 저 바다 건너 ‘지식사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소칼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붉은 글자로 ‘지식인’이란 만장(輓章)이라도 써야하려나 보다.
    그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공부(工夫)의 ‘공(工)’자형의 인물이다.
    工 맨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다방면의 견문을 갖춘 사람) 중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 맨아래::휴머니스트(humanist:인문적 교양을 갖춘 사람)

    지식인의 역할은 ‘깨어있고’ ‘보는 것’이다.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에서 한 말이다.
    한 영역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으려면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여기에 다방면의 견문을 얹어 폭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떠받치는 인문적 교양이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뇌의 소관이라면 ‘휴머니스트’는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마음의 영역이다. 뇌에는 아픔을 느끼는 기관이 없다.(뇌수술은 환자의 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한다.) 그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하다. 지식과 견문을 담당하는 이성적인 뇌와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감성적인 가슴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가 그 인문적 양심이다.
    이 인문적 양심이야말로 ‘바람직한 지식인상’의 바탕이요, ‘도덕적 해이’의 방부제다. 공부하는 이에게서 저러한 인문적 양심을 발라내면 무엇이 남겠는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런 <하여가何如歌>류의 삶-, 남의 눈비음을 맞추기 위한 지식이라면 저 앞의 향원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 ‘공부工夫’를 하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벽癖 하나쯤은 있어야 하리라.

    이 글은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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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칼 사건(- 事件, Sokal affair, Sokal's hoax)은 앨런 소칼(Alan Sokal)이 1996년에 유명 인문학 저널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이다. 이 사건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과 프랑스 철학계를 발칵 뒤집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뉴욕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였던 소칼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란 철학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의 이런 생각을 입증하기 위하여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Social Text’에 제출했다.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듀크대학에서 발행하는 ‘Social Text’의 봄/여름호에 출판되었다. 자신의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린 날, 소칼은 ‘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서 Social Text에 실린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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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지적사기사건 말씀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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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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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이걸 또 우리나라 이정우 교수가 반박했죠 과학의 입장에서 철학을 비판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당신들은 철학을 아냐 뭐 이런 식으로 비판한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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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그렇습니다. 그러나.소칼의.논문은 아예.말도 안 되는 엉터리.글입니다. 학문의 영토를.따지기도 전에 이미 지적사기임에.분명한.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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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그 분들은...도데체 뭘 배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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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일종의 권위의 오류이지요. 우리.사회에도 이런 일은 다반사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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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그렇죠 ..제 주위에도 간혹 있긴 하지만 ...가진자의 뭐 그런거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