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청과 닭

2009. 3. 16. 09:40카테고리 없음

해동청과 닭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곧 늙은 닭만도 못하옵고, 한혈구에게 쥐 잡는 일이나 시킨다면 곧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옵니다.(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이 말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이 57세 때 처음 포천현감(抱川縣監)으로서 올린 〈만언소(萬言疏)〉라는 상소에 보입니다.

 

‘해동청’은 매의 옛 이름입니다. 해청(海靑)·해동청골(海東靑鶻)이라고도 하며『재물보』에서는 해동청을 ‘숑골매’라 하여 랴오둥[遼東]에서 나며 청색이라 하였고, 『물보』에서는 해청을 ‘거문나치’라 하였습니다. 해동청은 날아오르는 힘이 강하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급강하하여 다리로 차서 떨어뜨린 다음 잡는 용맹한 새입니다.

‘한혈구’는 천리마의 일종으로 명마(名馬)의 이름입니다. 『史記 卷123 大宛列傳』에는 “본래는 한대(漢代)에 서역(西域)에서 산출되던 명마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천리마(千里馬) 또는 준마(駿馬)의 대명사로 쓰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땀이 어깻죽지에 피처럼 나므로 한혈(汗血)이라 부릅니다.

 

제 아무리 해동청이라도 새벽을 알리는 덴 늙은 닭보다 못한 것이요, 천리마라 한들 늙은 고양이보다 쥐를 잘 잡을 턱이 없지요.

그래, ‘각기소장(各其所長)’이니 ‘각자무치(角者無齒)’란 말이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각기소장’이란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장기(長技)가 있다는 말이요, ‘각자무치’란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나 복을 다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조로부터 패관체를 쓴다하여 배척을 당했던 비운의 작가 이옥(李鈺, 1760∼1812)은 <북관기야곡론北關妓夜哭論>에 이러한 글을 남겼다.

 

“누가 알았겠는가. 남들이 능하지 못한 것에 능한 자가 되려 남들이 능한 것에 능하지 못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가 홀로 남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함을(誰知? 能人之所未能者, 反不能人之所能, 有人之所無有者, 獨不有人之所有)”

 

하여, 사람이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 한 가지 재주가 있으면 다른 쪽은 영판 힘을 못 쓰는 법입니다. 아, 왜 저 중국의 미인 서시(西施)의 경우만 해도 그렇잖습니까. 월나라 여인인 서시는 오나라의 사적을 한 줌의 재로 만들 정도의 뛰어난 미모였습니다만, 불치의 가슴앓이 병을 앓았다지 뭡니까. ‘아름다운 서시에게도 추함이 있다’는 ‘서시유소추(西施有所醜)’란, 그래 현인에게도 단점이 있음을 비유해 종종 쓰이기도 합니다.

이왕 꺼낸 붓이니 붓질 한 번 더 하지요. ‘목불능양시이명(目不能兩視而明), 이불능양청이총(耳不能兩聽而聰)이란 말도 있습니다. 뜻을 새기자면 ‘눈은 두 가지 대상을 동시에 밝게 볼 수 없어 밝게 보는 것이며, 귀는 두 가지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없어 총명하게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뒷 글자를 합하여 ‘총명(聰明)’이란 두 글자에 대한 설명은 저토록 한 쪽을 보지 못하는 모자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 다 저러합니다. 해동청과 한혈구가 날짐승을 사냥하고 천 리를 내달리는 데서야 1류일지언정, 어찌 아침을 알리고 쥐를 잡는 것에서까지 그 명성을 보전하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 저와 다르지 않을 터, 닭과 고양이를 2,3류라 부를 수 없듯이, 우리네 인간은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1류, 2류, 3류, 공정성에 바탕을 둔 개별성. 이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