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의 미학

2009. 2. 14. 12:16카테고리 없음

욕의 미학

 

양반은 밤낮으로 울기만 할 뿐 해결할 방도를 알지 못하니 그의 아내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평생 동안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관에서 꾸어온 환곡을 갚는 데는 전혀 소용이 없구려. 쯧쯧! 양반, 양반은커녕 일 전(錢 : 한 냥(-兩)의 십분의 일)어치도 안 되는 구랴.”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의 양심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아내가 남편을 통매하는 장면이다.

“양반, 양반은커녕 일전(錢:한 냥의 십분의 일)어치도 안 되는 구랴.” 아내의 말은 양반을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두 번씩이나 ‘양반, 양반’이라 한 것과 ‘일전’에 유의해서 보자. ‘일 전’은 ‘한 냥’의 ‘십분의 일’ 밖에는 안 되는 지극히 적은 엽전 단위이다. 결국 두 번째 양반은, 양반(兩班)이 아닌 ‘양반(兩半)’, 즉 ‘한 냥의 ½’이니 ‘5전’이라는 소리이다. 결국 양반은 5전은커녕 1전어치도 안 된다는 뜻이다.

경기도 민요 한 자락 들어보자.

양반 양반

개 팔아 두 냥 반

돼지 팔아 석 냥 반

소 팔아 넉 냥 반

소를 팔으면 넉 냥 반이요, 돼지를 팔아서는 그보다 한 냥이 빠지는 석 냥 반, 개를 팔아도 ‘두 냥 반’은 받는다. 그러면 만백성 중에 으뜸인 양반은? 이 양반은 ‘냥 반’, 즉 ‘한 냥 반’이니 개 한 마리 값만도 못하다는 뜻이렷다. 못난 양반을 놀림조로 이르는 언어유희지만, 참말 개가 웃을 일이다.

조선후기를 산 우리네 양반들은 널브러진 민초들을 보지 못하였다. 이미 저 시대는 조금씩 비겁한 것이 미덕인 시대였으며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고만 우겨댔다.

“천 석군은 천 가지 걱정, 만 석군은 만 가지 걱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대로 라면 양반들은 더 많은 걱정을 했을 법한데, 쉽사리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혹 찾더라도 언행이 영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저들은 자신과 집안을 챙기는 이성의 간지(奸智)는 살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낮은 백성과 조국을 생각하는 열정은 없었다. 결국 조선을 팔아먹은 것도 저들이 아니었던가. 상민들은 나라를 팔아먹을 힘도 그렇다고 막을 힘도 없었다. 그저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그래 <봉산탈춤> 제6장에서도 “개잘 량이라는 양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 쓰는 양반”이라고도 하였다. 양반이 비꼬임의 대상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요, 욕으로 친다면 꽤 센 것이다.

저렇게 욕이 나오는 이유를 김열규 선생은, “세상이 중뿔나게 가만히 있는 사람 배알 뒤틀리게 하고 비위 긁어댄 결과 욕은 태어난다. 욕이 입 사나운 건 사실이지만 욕이 사납기에 앞서 세상 꼴이 먼저 사납다. 꼴같잖은 세상!”(김열규,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사계절출판사, 1997)이라고 욕의 출생부를 정리해 놓았다. 가히 욕의 미학이다.

가끔 길을 걷노라면 육두문자를 호기롭게 날리는 아이들을 본다. 저만한 나이라도 같은 땅을 밟고 사니 몹쓸 것을 왜 보고 듣지 못하겠는가. 떼로 몰려다니며 편 가르기 좋아하는 분들, 영달(榮達)에 여념이 없는 분들, 남 말 좋아하는 분들, 저만 잘난 줄 아는 분들 …, 양미간에 ‘내천자[川]’ 서넛씩은 그려야 하는 세상이다. 정도차이야 있겠지만,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은 나도 다를 바 없으니 참 낭패다.

읽는 이들께서 듣고 싶다면 대략 이러하리라.

‘정치한답시고 나라말아 먹는 분들 모가지를 뽑아 똥장군 마개로 하시고, 사업한답시고 제 배만 채우는 분들 염병에 땀구멍 막히소서. 저만 잘났다고 설치는 분들 아가리로 주절대는지 똥구멍으로 말하는지, 돈 많다고 돈 없는 사람들 깔보는 분들 복날 개잡듯 하고 학맥, 인맥으로 알음알이 당신들의 천국만 만드는 분들 벼락을 나이대로 맞아 뒈지소서.

참, 면구(面灸)스럽지만 조금은 시원한 것을 보니 욕의 말 요술이 여간아닌듯하다. 악담과 험구조차 그렇게 제 쓰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