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유감

2009. 2. 13. 15:10카테고리 없음

천자문 유감

 

중고등학생뿐만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선전이 무섭다. 메인 시간대에 공부를 하려는 아이와 이를 말리려는 부모, 머리를 질끈 동여맨 아이의 옆에서 공부감시를 하다 조는 부모 등-, ‘교육’이란 미명(美名)하에 벌어지는 모지락스런 어른들의 공부 상품화가 무섭고 아이들이 너무 애처롭다.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오로지 한 두 대학, 한 두 학과만을 두고 공부만 한다는 사실은 전율 그 자체이다.

이런 시류를 타고 한자 학습 또한 갖은 모양으로 아이들에게 짐을 지운다. 그 중, 『천자문』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처럼 휘두른다. 인터넷 교보문고에 들어가 『천자문』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무려 645권이나 뜬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어김없이 『천자문』 한 권쯤은 예사로이 볼 수 있다. 가히 『천자문』의 화려한 부활이다.

단적으로 말한다. 『천자문』을 배우느니, 차라리 『명심보감』이나 『추구』 등을 학습케 하는 것이 낫다.

 

마을의 꼬마 녀석이 천자문을 배우는데 읽기를 싫어하여 꾸짖었답니다. 그랬더니 녀석이 말하기를, “하늘을 보니 파랗기 만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이 때문에 읽기 싫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주려 죽일만합니다.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我聰明 餒煞蒼頡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지삼(答厓蒼之三)」이란 글이다. 전문이 겨우 서른 넉자에 불과한 글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린아이와 선생의 대화를 통해 연암은 자신의 언어인식을 재미있게 드러냈지만 저기에 『천자문』의 허가 있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본 하늘은 그저 파랄 뿐이다. 그런데 ‘하늘 천(天)’자에는 전혀 그런 내색조차 없다. 『천자문』의 첫 자부터 이러하니 999자를 어떻게 감당해 내겠는가. 그러니 ‘읽기 싫다’고 외치는 어린 아이의 내심을 똥겨주는 말이다.

사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이란 ‘天地玄黃(천지현황)’이란 이 넉 자의 풀이는 쉽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아닌가? 그렇다면 저 꼬마둥이처럼 글자 속으로 좀 들어가 보자. ‘하늘이 왜 검지요?’

……?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은 동서고금을 무불통지로 넘나들이하는 석학 선생이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풀어 말할 수 없는, 우주의 진리를 담은 묘구(妙句)이다. 그러니 저 아이만 나무랄게 아니다. 선생이 제대로 설명치 못 하니 아이들은 외울 뿐, 다음부터는 공부란 그러려니 하고 그저 외워댈 뿐이다.

연암 선생이 저 글을 쓴 이유를 좀 더 살펴보자.

저 위의 짧은 글은 편지이다. 연암과 후일 척을 두고 지낸 의고주의자(擬古主義者) 창애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란 이에게 보낸 것이라는 점을 주의한다면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유한준은 진한고문(秦漢古文)을 추종하는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이기 때문이다.

유한준과 진한고문은 두어 문단 아래서 다시 보고 말을 좀 돌려 보자. 종종 인생판의 행마법(行馬法)을 터득한 이들은 묘수를 잘 둔다. 그것은 시대와 적당한 타협을 벌이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으로 공인된 ‘관념’ 틀거지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저 시절, 저러한 눈으로 『천자문』을 바라보니 이보다 더 좋은 글은 없었다. 혹 있다손 치더라도, 『천자문』을 대처할만한 새로운 글을 만들 자신도 없으니, 굳이 그러한 생각을 타인들에게 엿보일 이유가 무에 있겠는가.

그래서 연암은 「종북소선자서鐘北小選自序」에서 창힐이 글자를 만든 뜻을 크게 치지 않았다. 연암은 “글자를 만들 때 내용을 들어보고 형상을 그려내며 또 그 형상과 의義를 빌려서 쓴 것(造字亦不過 曲情盡形 轉借象義如 是而文矣)”이라고만 하였다. 연암은 창힐이 ‘내용을 들어보고 형상을 그려내’ 한자를 처음 만들었듯이, 사람의 글인 인지문(人之文)은 늘 만들어 진다는 의미로 이글을 써놓은 것이다.

쉽게 풀어 보자. 연암의 말은 창힐이 한자를 만들 때 새의 발자국을 보고 ‘창의적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는 소리이다. 당연히 천자문은 인지문의 정형이 아니다. 맞지 않으면 고쳐야하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사물이 없듯이 언어 또한 고정적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당대의 문장가들, 이 편지를 받는 유한준 같은 이들은 ‘문필진한’이니, ‘시필성당’이니를 외워대며, 『천자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였다. ‘문필진한文必秦漢’은 문장을 하려면 선진양한을 본받아야 하고, ‘시필성당詩必盛唐’은 시를 지으려면 성당(盛唐)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대주의의 전형적 사고 아닌가. 연암은 『천자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이렇듯 고정된 사고를 폭압적으로 학습시키는 못된 행동으로 여겼다. ‘아이의 총명함이 한자를 만든 창힐을 주려 죽일만’하다는, 이 맺음 말결에서 『천자문』 학습의 잘못됨을 경고하는 연암의 의도를 확연히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연암 혼자만이 아니었다.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지었다는 이 『천자문』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들의 학습교재로 널리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우리와의 친분은 꽤 깊다. 이 기록이 285년이니 말이다. 허나 『천자문』은 1구 4자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고시(古詩)이기에, 주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당연히 여러 선각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조선후기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학자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연암 이외에 대표적인 학자를 들자면 정약용 선생이다.

정약용 선생은 『담총외기(談叢外記)』에 실린 그의 「천자문불가독설(千字文不可讀說)」이라는 글에서 『천자문』은 아동들에게 암기위주의 문자 학습을 하도록 강요하여, 실제 경험세계와 유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연암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다. 즉, 『천자문』은 천문개념(天文槪念)에서 색채개념(色彩槪念)으로, 또 다시 우주개념(宇宙槪念)으로 급격한 사고전환을 하기에 아동들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이해를 상실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다산시문집』 제17권 「증언(贈言)」‘반산 정수칠에게 주는 말’에서는 『천자문』의 폐해를 더욱 직설적으로 써놓았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서거정(徐居正)의 『유합(類合)』과 같은 것은 비록『이아(爾雅)』와 『급취편(急就篇)』의 아담하고 바른 것에는 미치지 못하나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보다는 낫다. 현ㆍ황(玄黃)이라는 글자만 읽고, 청ㆍ적ㆍ흑ㆍ백(靑赤黑白) 등등 그 부류에 대해서 다 익히지 않으면 어떻게 아이들의 지식을 길러 줄 수 있겠는가? 초학자가 『천자문』을 읽는 것이 우리나라의 제일 나쁜 더러운 버릇이다.”

 

 

저러한 선각께서 “이것은 우리나라의 제일 나쁜 더러운 버릇이다(最是吾東之陋習)”라고 까지 극언을 하셨거늘, 오늘날 모든 어린아이들의 책상에 『천자문』이 놓였으니 어찌된 셈인가?

『천자문』으로 공부깨나 한 분에게 경을 칠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비단보’에 개똥’이라는 우리네 속담을 생각해봄직도 하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