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백화점

2009. 1. 22. 11:40카테고리 없음

지식백화점

공부랍시고 하다 보니 자연 저 학문이란 세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봅니다. 외국 물을 먹어야만 일류라 생각하는 이들도 꽤나 되더군요. 그들은 예외 없이 맨드리가 화사하고 지성미가 넘치는 ‘지식백화점(知識百貨店:knowledge department store)’이란 상점을 경영합니다. ‘지식백화점’ 곳곳은 서양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도매금으로 끊어다 놓은 상품이 잘 포장되어있습니다. 물론 큼직하니 ‘Made In America’, ‘Made In France’, ‘Made In England’, ‘Made In Japan’, ‘Made In China’(요즈음 다시 조선 복고풍으로 중국산도 1류 상품입니다.)라는 상표도 잊지 않습니다. 1류요, 물 건너 왔기에 값은 물론 도매가 아닌 소매입니다. 즐비한 상품 대부분이 고가이지만, 늘 지식꾼을 자처하는 이들로 북적입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이곳을 기웃거리다가 몇 상품을 비싸게 구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온 물건이 좀체 쓰기가 어렵습니다. 영 내 몸에 잘 맞지가 않아서입니다.

그래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 고향엔 잎이 떨어진 버드나무만 있습니다.>

여요(餘姚) 출신 선생들은 오 지방에서 훈장노릇을 하느라 이른 봄에 떠나 섣달이 되어서야고향에 돌아왔답니다. 그러다보니 고향의 풍물은 오히려 잘 알지 못하였겠지요.

한 여요선생이 훈장질을 다니다 잎이 푸른 버들을 보았답니다.

그래 주인에게 고향에 가 심으려하니 한 가지만 꺾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수양버들이었습니다.

그래 주인이 “이것은 아주 흔한 종자로 없는 곳이 없을 텐데요. 선생 고향에만 없을 리가 있겠는지요?”라고 하였겠지요.

그랬더니 여요선생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무슨 말씀을 제 고향엔 잎이 떨어진 버드나무만 있습니다.”

제 ‘정신’, 제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박래품(특히 서양)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들이 삼류겠지요.

이 이야기는 명대(明代)의 소화집(笑話集)인『종리호로(鐘離葫蘆)』<여요선생(餘姚先生)>에 보인다. 여요(餘姚)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여요(餘姚)지방으로 왕수인(王守仁), 구양순(歐陽詢) 등 유명한 학자가 많이 난 곳이다. 예로부터 오나라 훈장노릇을 많이 하였다.

우리 지식인들의 독점적 권위를 부여하는 ‘논문’을 서양문화의 수입으로 여기고 자생적 글쓰기를 주장하는 전주 한일신학대학교 김영민 교수의 글도 있다.(김영민,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민음사, 199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