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민옹전>에서

2008. 7. 22. 10:51고소설 밑줄 긋기

 

연암 박지원의 <민옹전>에서 뽑은 구절입니다.

어떤 문장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 또는 그런 글 마디를 읽음으로써 맛보는 재미를 ‘글맛’이라고 한다면 <민옹전>은 꽤나 매운 소설이다.

연암은 ‘황충’을 이야기하면서 실상은 하느작거리며 종로를 거니는 양반을 공격한다. ‘황충蝗蟲’은 풀무치라고도 하는데 메뚜깃과에 속한다. 중국 당태종은 메뚜기 떼가 들이닥치자 이렇게 말했다 한다.

 

 “백성은 곡식을 생명으로 하는데, 네가 곡식을 먹으니 차라리 나의 폐장肺腸을 파먹어라.”

 

그리고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황충을 날로 씹어 삼켰다고 한다.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는 내가 용서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그렇게 떠받드는 당태종의 ‘정관의 치’는 이렇게 세워진 것이다.

조선에서도 황충은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사전에는 “좋지 못한 사람은 가는 데마다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말”로 뜻을 달아 놓고 있다.

18세기 연암이 살던 시절, 나라에서 벼를 갉아먹는 황충을 잡으라고 하자, 연암은 이렇게 일갈한다.


 

이것들은 조그만 벌레이니 조금도 걱정할 것은 없어. 내가 보니 종로거리鍾樓를 메운 것은 모두 황충이야. 키는 모두가 칠 척 남짓이고 머리는 검고 눈은 반짝이는데 입은 커서 주먹이 들락거리지. 웃음을 치면서 떼로 다니니 발꿈치가 닿고 엉덩이를 잇대고는 얼마 남지 않은 곡식을 모조리 축내니 이 무리들과 같은 건 없을 게야. 내가 이것들을 잡아버리고 싶은데 커다란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스럽다네.

此小虫不足憂 吾見鍾樓塡道者 皆蝗耳 長皆七尺餘 頭黔目熒 口大運拳 咿啞偊旅 蹠接尻連 損稼殘穀 無如是曹 我欲捕之 恨無大匏


“키는 모두가 칠 척 남짓이고 머리는 검고 눈은 반짝이는데 입은 커서 주먹이 들락거리지. 웃음을 치면서 떼로 다니니 발꿈치가 닿고 엉덩이를 잇대고는 얼마 남지 않은 곡식을 모조리 축내”는 황충이 누구인가?

부모 잘 만난 양반족의 무뢰배나 한량들 아닌가. 종루鍾樓, 지금의 종로로 조선의 국심國心 거리를 활보하는 저 경화사족들이 ‘진짜 황충’이라는 소리이다. 연암소설에 보이는 이러한 무세어誣世語, 세상을 풍자하였다는 비평어에서 감자여甘蔗茹, 소설을 읽는 정서적 감흥을 사탕수수 맛에 비유하는 비평어를 곧장 느낀다.

사실 요즘도 저자거리에는 이런 황충이 많다. 이런 잡것들을 용수로 걸러내면 좋으련만, 내남없이 용수를 들 자 또한 없는 것이 안타깝다.

가뜩이나 힘든 요즈음이다.

18세기 종로인 오늘날의 여의도, 그 여의도에서 백성 돌보는 일은 뒷전에 두고 왁자하니  ‘개헌 운운’ 소리가 들린다. 민옹의 저 말이 생각나는 것은 나 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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