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시골집을 다녀와서

간호윤 2014. 3. 25. 09:17

온양에서 모임이 있었다. 겸하여 어머니 혼자 사시는 시골집에 들렀다. 근 두 달째 잠을 제대로 못 이루신다는 것도 걱정되었고 텃밭에 비료를 늘어놓을 겸해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동네에서 제일 큰 이 집에서 잘 견디며 텃밭을 가꾸신다.

늦게 도착하여 하룻밤 묵고 일찍 일어나 비료를 밭에 늘어 놓고는 어머니와 식탁에 앉았다. 모처럼 모자간 겸상이다. 반찬이라야 짠지에 김치, 된장, 파무침, 감자국이다.

"아범은 국이 있어야 먹지. 끓였는데, 내 요새 입맛을 잃어 간을 모르겠어."

 20살에 시집오셔셔 이날까지 몸으로 살아 오신 어머니다. 내 아버지와 평생을 농사 짓느라 굽은 손가락으로 몇 숟가락질을 하시더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아범, 머리 깎았구먼. 이제야 선생님 같구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벌써 나무랐을텐데.----"

내 아버지는 자식이 선생이라는 사실에 꽤 만족해 하셨다. 당신이 시골서 농사를 지어 자식을 가르쳤다는 자부심이셨는지도 모른다. 그 직업에 대한 예우가 전과 달라졌다는 것도 끝내 인정하시지 않고 돌아가셨다. 시골 분이지만 옷차림과 예의를 꽤 따졌고 동네에서 우리집 대문을 가장 먼저 열고 마당을 쓰셨다. 그러고보니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내 아버지의 부지런함 덕이다. 그런 아버지는 내가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에 꽤나 집착을 보였다.
"거, 선생님이. 하이칼라로 머리를 싹 빗어 포마드를 바르라니까."라는 말을 나만 보면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난 비로소 머리를 길렀다. 그리고 얼마전 다시 예전처럼 깎았다. 몇 해, 내 머리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지 어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보신다.

"그런데 아범 머리카락이 많이 희었어. 어느새 이렇게 되었네. 부모가 물려준 것도 없고---- 나이도----"

내 늙으신 어머니의 눈가에 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제야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이, 움푹 들어 간 괭한 눈이, 더부룩하게 흘러내린 흰머리카락이, 한 줌도 안 되는 갸냘픈 어깨가 눈에 들어 왔다.

'흥천 이쁜이'라고 조암장에서도 알아주던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다. 그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뿌여졌다.
아마도 감자국의 김이 올라와 안경에 서리가 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