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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21일 Facebook 이야기

간호윤 2013. 1. 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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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일찍이 이름난 산과 커다란 도회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밝은 달밤에 배를 띄우고 술에 취하였다. 왼손으로 술항아리를 두드리고 오른손으로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는 하늘 끝에까지 이르렀다. 마치 옆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울부짖기를, ‘세세생생[世世生生, 불교에서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還生)함]에 다시는 이 나라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여규형(呂圭亨,1848(헌종 14)~1921)이 차좌일의 행장에 쓴 기록이다.

    차좌일(車佐一,1753(영조 29)∼1809(순조 9)은 조선 후기의 시인.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자는 숙장(叔章), 호는 사명자(四名子)다. 유명한 차천로의 6대손으로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집안사람들조차 모른 것으로 보아 서얼출신인 듯하다. 그는 쓰임을 받지 못하여 만년까지 만호라는 미관말직에 머물렀다.
    이 글을 쓴 여규형 또한 뛰어난 재사이나 꿈을 펴지 못하였다.

    허경진, 『평민문학사』, 범우사, 1996, 66쪽을 보다가.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한 거짓학력 사건을 통해서 거짓말을 하게되는 심리와 학벌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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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학력, 경제력, 외모,,
    초월하고 삽니다ㅋ
    심지 굳건한
    생명철학을 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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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윤 ㅎㅎㅎ, 맞습니다. 그래 박제가라는 이는 좋든 나쁘든 ‘벽(癖)’ 하나쯤은 지녀야 한다고 하였지요.